법원이 17일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와 이성근 산은캐피탈 사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함에 따라 현대차그룹에 대한 수사가 큰 난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검 중수부는 법원에서 영장이 매우 이례적으로 기각되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대검 중수부는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박 전 부총재와 이 사장의 혐의 입증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들의 혐의는 위아와 아주금속공업의 부채탕감을 대가로 현대차 로비스트인 김동훈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로부터 각각 14억5000만원과 1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것.

두 사람은 영장실질심사에서 "당시 현대차 계열사 부채 탕감은 공식대로 진행됐으며 개인의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없었다"고 금품수수 사실을 전면 부인했지만,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부채탕감을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라면 현대차가 돈을 주면서까지 부탁할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 두 사람의 손을 들어주었다.

법원의 영장 기각 결정에 대해 검찰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며 "보강조사를 거쳐 영장 재청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두 사람의 구속영장 기각이 곧바로 무혐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사천리로 진행돼온 검찰의 현대차 수사에 급제동이 걸린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검찰은 위아 등 옛 기아차계열사들이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CRC)를 거쳐 현대차그룹으로 재편입(M&A)되는 과정이 비자금 의혹을 푸는 핵심 열쇠라고 판단,수사력을 집중해왔다.

그런 만큼 파장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적어도 이달 말까지 현대차 비자금 조성 수사는 물론 관련자들의 형사처벌 수준까지 일괄적으로 정하겠다는 수사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달부터 본격 진행키로 한 비자금의 용처 수사도 타격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박 전 부총재와 이 사장은 현대차의 비자금이 전달된 첫 케이스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향후 로비의혹 수사는 단서의 상당 부분을 관계자들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검찰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아진 셈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