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는 괜찮지만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도요타 등 경쟁업체들이 현대차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마케팅에 본격 활용할테니까요.

7년여 전 '10년-10만마일 보증'에서 시작한 '현대차 신화'가 이번 사태로 무너질까 걱정됩니다."(도널드 젠킨스 현대차 플로리다 딜러)

"미국은 한국과 다릅니다.

한국에선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계속 팔리겠지요.

하지만 미국에는 현대 말고도 너무 많은 브랜드가 있어요.

한번 이미지가 실추된 기업이 다시 일어서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조지 켈리 현대차 피츠버그 딜러)

지난 12일 오후 7시 서울 압구정동의 한 한식집.푸른 눈의 외국인 70여명이 삼삼오오 모여 불고기 안주에 소주를 들이키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들은 현대차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현대차 미국 딜러들.지난 9일 방한한 뒤 제주도에서 열린 중장기 사업계획 세미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딜러들을 위해 현대차가 마련한 환송회 자리였다.

소주가 몇 순배 돌자 이야기의 주제는 현대차에 대한 검찰 수사로 모아졌다.

딜러들의 얼굴이 이내 굳는다.

현대차 딜러를 하면서 경험한 '성공 스토리'를 앞다퉈 쏟아낼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플로리다 딜러인 젠킨스씨가 말문을 열었다.

4개 전시장을 운영하는 그는 연간 신차 5000대,중고차 3000대를 판매하는 A급 딜러다.

"현대차 인기가 너무 높아 최근 전시장을 하나 더 오픈했는데 이런 악재가 터져 걱정이에요.

신문과 방송에서 나쁜 소식을 쏟아내면 소비자들이 '현대차에 무슨 일이 있나'라며 구매를 미룰 게 분명하거든요.

미국인들이 스캔들에 관대하지 않다는 점을 경쟁업체가 활용할 수도 있고…."

켈리씨가 거들었다.

GM 딜러였던 그는 2001년부터 현대차 딜러를 병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5년간 나에게 'Gift from God(신의 선물)'이었어요.

제가 맡은 피츠버그 북부에선 도요타를 누르고 판매 1위에 오를 정도니까요.

한국 검찰이 내게서 'Gift from God'를 빼앗아갈까 걱정됩니다."

이야기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염려로 이어졌다.

딜러들은 타임지에서 4페이지짜리 특집기사를 게재할 정도로 존경받는 정 회장이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다.

젠킨스씨는 "오늘의 현대차를 이끈 정 회장의 리더십에 대해선 미국 딜러들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있다"며 "혹시라도 현대차가 조타수를 잃는 상황이 올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켈리씨는 "현대차 신화를 이룬 정 회장은 미국에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드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그런 그가 검찰 수사 때문에 곤욕을 치를 경우 개인 차원이 아닌 한국의 수치가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온 한 딜러는 "정 회장은 한국에 엄청난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한 인물"이라며 "우드로 윌슨 상은 아무에게나 주는 게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또다른 딜러는 "어찌 됐건 한국 검찰이 이제 막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현대차에 찬물을 끼얹은 건 사실"이라며 "중국 등 다른 나라는 정부가 앞장서 자국 브랜드를 보호·육성하는데 한국 정부만 고강도 수사로 기업을 흔드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시간가량의 환송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딜러들의 발걸음은 한국에 도착했을 때보다 무거워져 있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