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 공업국 독일은 구산업(직물 철강)과 신산업(기계 전기 화학 자동차)을 동시에 일으키고 자본재산업에 치중했다.

특히 중화학공업에서 규모와 범위의 경제를 추구했다.

미국의 경험을 보면 세 방향 투자(생산 분배 경영)가 잘 되어야 대기업으로 성공했다.

독일 대기업도 성장과 조직면에서 미국 모델에 가까웠다.

독일도 19세기 후반 철도·전신산업의 시장이 확대되면서 기업 규모가 급속히 커졌다.

때마침 독일 역사상 최초로 실질적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통일 후 독일 인구는 미국과 비슷했으나 인구증가률은 미국에 뒤졌다.

인구가 영국보다 많았지만 도시거주 인구비율은 영국에 크게 밑돌았다.

그래서 교통·통신시설 확충에 따라 국내시장이 확대되는 정도가 미국만큼은 아니었어도 영국보다는 컸다.

독일은 처음부터 유럽 전역 시장을 겨냥해 시장 확대가 기업 규모와 행동에 끼친 영향도 영국보다 컸다.

독일에서 철도·전신산업은 국영이어서 미국처럼 새 경영 모델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대규모 자본 조달을 위해 신용은행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다른 부문의 기업이 클 때 자금 조달 방식의 선례가 됐다.

신용은행은 일반 시중은행,개발은행,미국식 투자은행 역할을 동시에 했다.

이는 독일형 종합은행으로 발전해 단기운영자금,장기 대규모 시설자금 대출,기업체가 발행한 유가증권인수,중개업무까지 담당한다.

자본시장 발달이 늦어 이 기능을 국가와 은행이 대신한 것이다.

독일식 기업 지배구조의 역사적 연원이다.

실제로 영·미식 시장 중심 자금 조달이 독일이나 일본식 은행 중심보다 우월한 지에 관한 이론적 합의는 없다.

주인-대리인 문제,정보 비대칭성,도덕적해이,무임승차자 문제,불완전경쟁 등 시장실패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선택은 역사적으로 경로종속(출발에 따라 과정,결과가 결정되는 것)의 한 예일 뿐이다.

기업 대형화,업종다변화로 기업경영이 복잡해지자 경영업무가 전문화·조직화될 필요가 생겼다.

영국과 달리 산업교육에 충실했던 독일에서는 과학·경영기술이 발달했고 기업에 필요한 전문기술,경영인력 공급이 잘 이뤄졌다.

독일 대기업들은 처음부터 세계시장이 무대여서 앞선 영·미 기업과 치열하게 경쟁했다.

그래서 자기네끼리는 경쟁을 피해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협동·담합했다.

카르텔 방식이던 기업 간 협력체제가 1차대전 후 더 강력한 I G(판매·구매·연구개발을 함께 하고 이윤도 통합해 생산하지만 각 기업의 법적·행정적 지위는 유지되는 연합체)나 콘체른(기업결합)으로 발전했다.

자금 조달을 종합은행에 의존하는 터라 이는 더욱 강화됐다.

종합은행은 자신이 자금을 대출해준 기업들이 출혈경쟁을 하는 것보다 협조가 바람직했고,그래서 기업 간 협동을 강력 유도했다.

기업 간 공동행위가 정착하면 개별기업 대주주가 해당 기업을 장악해도 기업연합의 경영이 어느 한 대주주 마음대로 되기 어렵다.

가족경영자 뜻이 기업경영에 반영되는 폭이 그만큼 감소한다.

은행 대표의 영향력도 커서 가족경영자의 경영 통제력은 더욱 제한된다.

주주총회가 선출한 감사들로 감사회를 구성해 이사회를 감독하는 '복수이사회' 제도 또한 가족경영자의 영향력 감소에 한몫했다.

은행대표도 감사회를 통해 기업경영에 개입했다.

이 제도 정착으로 독일의 대기업 경영권은 주주총회의 직접 지배와 거리를 둘 수 있었다.

1950년대 도입된 공동결정제도에 따라 감사회 절반이 노동자 대표로 구성되면서 지배적 대주주의 경영통제권은 더욱 감소했다.

경영업무가 복잡해지면서 소유가 집중된 대기업이라도 전문경영자가 경영권을 행사했다.

가족경영 감소 추세는 1930년대부터 뚜렷하다.

대형화 투자가 완료되고 전문경영자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나면 대형화 초기에 컸던 은행 대표의 영향력도 줄었다.

일본은 직물업에서 공업화가 시작돼 1920년대 이후 빠르게 중화학공업으로 이행됐다.

초기에는 정부 투자가 중요했으나 차츰 재벌이나 대자본이 공업 성장을 주도했다.

소수 대기업이 여러 산업 부문을 지배했으며 은행부문도 집중되었다.

재벌의 콘체른화 과정에서 기관은행과 상사가 주요 역할을 했다.

재벌계 은행은 자본 조달을,상사는 국제유통조직을 통해 판로를 확보했다.

재벌이 해체된 2차대전 후에도 계열융자,주식상호소유,인적결합으로 기업집단이 형성됐다.

그 중심에 은행과 종합상사가 있다.

경제력 집중과 함께 주식공개가 진전되면서 '소유와 경영 분리'가 뿌리내렸다.

대기업 형성의 역사를 보면 자금조달방식,기업소유구조,경영권 간의 관계는 생각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사내유보에 의한 내부자금 조달 비중이 커진 요즈음,선진국의 경우 더욱 그렇다.

신흥시장은 기업거버넌스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규제 도입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