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4강 이끈 '김인식 감독'] "선수들 믿고 기다리니 해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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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59)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사나이'의 전형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조직의 두목'처럼 사재를 털어 '부하'에게 베풀고 부하들은 그런 두목에게 충성을 다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후배들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심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그의 천성이자 성품이라고 주변에서는 평한다.
배곯던 시절 그가 자신의 쌀독을 비워 후배들의 쌀독을 채워줬다는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이 같은 그의 성품은 자연스럽게 후배들의 충성심을 이끌어낸다.
김 감독이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 수석코치를 하던 때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나면 한 후배는 김 감독을 광주 숙소까지 무려 8시간 넘게 걸려 '모셔다주고'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올해 52세인 유지훤 한화 수석코치는 지금도 김 감독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술자리에서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잠시 나갔다가 들어온다.
그렇다고 김 감독이 권위적이거나 위압적인 것은 아니다.
후배들이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는 언제나 후배들을 인격적으로 대한다.
지난 30일 마산 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경기를 앞둔 김 감독을 만나 야구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5세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으셨지요. 그래서 누구보다 부상선수 재활에 뛰어나다는 평가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부상 선수들을 보는 느낌이 다르지요. 아픈 선수는 참고 기다려줘야 합니다. 부상당한 선수는 어떻게든 빨리 시합에 나가려고 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십중팔구 부상이 재발 하지요. 일단 기다리라고 하고 자주 그 선수와 대화를 합니다."
-술집을 가더라도 한 곳만 가셨다고 하던데요. 선수를도 역시 끝까지 믿는 스타일입니까.
"안되는걸 계속 믿을 수야 있나요. 몇개월 후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거지요. 판단의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개성있는 스타들이 많아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선수들 스스로 협조를 잘했어요. 저는 상식선에서만 행동하자고만 결심 했고요. 상식선을 무너뜨리지 말자, 특히 시간만 잘 지키자는 생각을 했지요. 미국에서 뛰는 선수들은 외국 생활에 몹시 외로웠던거 같아요. 국내 선수들과 아주 재미있게 지내더라고요. 미국에서는 어울려봐야 1∼2명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평소 선수들에게 어떤 점을 강조하시나요?
"역시 제일 중요한 것은 집중이지요.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시합에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으면 불러서 대화를 합니다. 감독생활을 오래하다보니 그런게 눈에 잘 들어오지요."
-평생 잊지못할 순간을 꼽는다면.
"아무래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일본을 두 차례 꺾은 것이죠. 특히 도쿄에서 이승엽이 홈런을 친 것과 미국에서 이종범이 2루타를 친 장면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일본과 다시 경기를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본은 우리보다 분명히 한 수 위입니다. 투수 배팅 수비 민첩성 등 모두 뛰어나죠. 그러나 경기는 해봐야 아는 겁니다. 그날 투수의 컨디션이 승부를 판가름 하지요. 일본이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졌잖아요. 단기 승부는 예측할 수 없어요."
-야구를 인생과 비교하신다면.
"인생은 굴곡이 있잖아요. 야구도 1회부터 9회까지 굴곡이 많지요. 점수를 낼 때면 좋다가도 순식간에 역전을 당하기도 하고. 팀으로 따진다면 좋은 선수들이 많으면 '부잣집에 태어난 것'과 같아요. 부잣집에서 태어나면 큰 어려움없이 자라니까요"
-삶에서 잊지 못할 계기가 된 '사건'이 있습니까.
"1994년 9월에 OB베어스(현 두산베이스)에서 선수들이 집단이탈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쌍방울 감독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저에게 후임 감독의 기회가 주어졌지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을 했어요. 남에게는 잘 안됐지만 저에게는 큰 기회가 된 셈입니다."
-자신의 야구 인생을 100점 만점에서 몇점으로 평가하시나요.
"그동안 굴곡이 많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래 하고 있고 대우도 잘 받고 지금은 여러분들이 성원해주고 있으니 만족합니다."
-선수를의 무엇을 가장 먼저 보나요.
"눈을 봅니다. 기량이 좋은 선수는 눈빛이 달라요.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가슴도 좋아야 하거든요. 기량은 좋은데 술 먹지, 운동 안하지, 말 안듣지 해서 못크는 선수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외국 선수를 스카우트할 때도 반드시 자라온 환경을 체크합니다."
-전적이 736승38무772패로 패전이 많습니다. 지고 나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그렇게 많이 져도 지면 힘들죠. 어떤 경우엔 왜 졌나를 잠시 생각하다가 4∼5시간이 흐른 적도 있다니까."
-2004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졌는데요.
"오래 전에는 '내가 저 꼴을 당하면 안될텐데' 하고 걱정을 많이 했지만 막상 쓰러지고 나니까 '별거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신도 말짱하고 재활하면 되겠구나 하는 의욕이 생겨나더군요. 빠르게 회복 됐어요. 한 달만에 절룩거리지만 스프링캠프도 갔고 …. 그래도 병원에 누워있을 때는 '이제 관둬야 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사장을 만나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려고도 했어요."
-술을 많이 드셨다고 하던데요.
"아프기 전에 많이 먹었지요. 그렇게 많이 먹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밤새워 먹는 경우가 있어서인지 주변에서 많이 먹는다고들 하더군요. 지금은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습니다."
-야구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전혀 없어요,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인터뷰가 끝날 즈음 시범경기 상대인 강병철 롯데 감독이 찾아와 수고 많았다는 말을 건네면서 "세계적인 명사가 되셨으니 사인이나 받아둬야 겠다"고 하자 김 감독은 활짝 웃었다.
대담=한은구 기자.사진 김병언 기자 to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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