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4강 이끈 '김인식 감독'] 투박함 속에 유머 넘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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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감독은 배문중 2학년 때 야구에 입문해 한일은행 시절 실업야구 최고 투수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해병대에 입대한 뒤 어깨를 혹사하면서 25세의 한창 나이에 유니폼을 벗었다.
제대 후 한일은행 직원으로 1년가량 일하면서 배문고 감독직을 맡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상문고와 동국대 감독으로 옮기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프로 무대에 뛰어든 것은 1986년 해태 타이거즈 수석코치를 맡으면서부터다.
1990년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이 됐으나 팀의 부진으로 그만두고 야인생활에 들어갔다.
어려운 세월을 거친 뒤 1994년 내분에 빠진 OB 베어스의 감독을 맡으면서 활짝 피어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뒤 2001년에 또 한 차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2004년부터는 한화 이글스 감독을 맡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을 지냈고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대표팀 감독으로 '4강신화'를 이끌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을 끝까지 신뢰하는 '믿음의 야구'를 한다.
아무리 선수가 부진해도 끝까지 밀어준다.
2001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유격수 홍원기가 어이없는 실책을 하며 패배를 안겼지만 2차전에도 그를 기용하며 신뢰를 보냈다.
홍원기는 2,3,4차전에서 3경기 연속 홈련을 터뜨리며 보답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빈타에 허덕이던 최희섭 등을 끝까지 기용해 중요한 고비에 한 방을 터뜨리도록 이끈 점도 김 감독의 '용병술'이다.
부상하거나 다른 팀에서 버려진 선수도 모두 제 식구로 불러들인다.
정민철 문동환 김기태 정수근 등이 그의 그늘 아래서 빛을 봤다.
일본에서 돌아온 조성민을 거둬 재기시킨 일화도 유명하다.
조성민이 방송해설을 하고 있자 "거기서 뭐해? 야구해야지.곧 부를테니 준비하고 있어" 했다가 실제로 그를 불러들여 기용했다.
투박하지만 유머도 많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 여기자가 선수단복을 입은 김 감독을 보고 멋있다고 칭찬하자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만원짜리 몇 장을 꺼내 건네는 척 하면서 '고마워'라고 해 주변 사람들이 박장대소했다.
또 미식축구 선수인 하인스 워드가 박찬호와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워드에게 "대주자로 뛰면 좋겠구만"하고 말해 선수들을 즐겁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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