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비자금 수사로 '경영 공백'에 빠진 현대차그룹에 이번엔 노조의 압박까지 더해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 노조는 이번 비자금 파문을 계기로 회사측의 임금동결 요청에도 불구하고 9%대 인상을 요구할 태세인데다 다음 달 6일께 비정규직 처리법안 통과에 반대하는 총파업마저 계획하는 등 공세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30일 현대차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소속 11개 노조는 이날 '현대·기아차그룹 비자금에 대한 노조의 입장'이란 공동 성명서를 내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동시에 노조도 강력히 대응해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공세 수위 높이는 노조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최고경영진의 신뢰경영과 투명경영은 화려한 말잔치에 불과했다"며 "결국 비상경영은 임직원들의 임금동결과 납품단가 인하로 얻은 자금으로 정치권 로비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아울러 지난 27일부터 2006년 임단협 요구사안 심의에 들어가 다음 주 중 최종 요구안을 내놓기로 했다. 노조는 회사측의 임금동결 요구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이 제시한 9%대 인상을 요구안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박유기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조합원 및 협력업체가 노력한 대가로 비자금을 마련한 만큼 임금동결이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는건 옳지 않다"며 "임금 인상률은 회사의 지불능력과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9% 안팎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회사측의 부품 단가 인하 요구에 대해선 협력업체와 공동 대응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현대차 노조는 특히 기본급을 올리지 않아도 근속 연수에 따라 매년 임금이 인상되도록 임금체계를 호봉제로 바꿔나가는 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아울러 생산직뿐 아니라 일반직과 연구직의 노동강도 완화도 추진하고,경영권에 속하는 해외공장 확대 및 공장 간 생산물량 조정에도 '고용 안정'이란 명목을 달아 적극 참여키로 했다. 기아차 노조의 경우 올해 임단협 안건에 '전 조합원에게 스톡옵션을 지급한다'는 안건을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현대·기아차 노조는 또 다음 달 6일 국회에서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총파업에 가담키로 했다. ◆깊어지는 경영공백 현대차는 지난 29일 채양기 기획총괄본부 사장에 이어 30일 이정대 재경본부장마저 검찰에 소환되자 각종 현안 조정 작업이 올 스톱된 상태다. 그룹의 심장부인 재경 및 기획총괄본부가 핵심 서류들을 대부분 압수당한데다 수뇌부가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만큼 경영공백이 장기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이번 사태로 활발한 현장경영을 펼쳐온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기아차 사장의 운신 폭이 좁아졌다"며 "이로 인해 자칫 현대차의 대외 신인도가 떨어질 경우 국내외에서 벌여놓은 신사업도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번 사태로 인해 사내외에선 현대·기아차의 해외 공장 신증설과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건립,만도 인수를 통한 부품업체 수직 계열화 등 핵심 사업이 줄줄이 지연되거나 수정될 것이란 걱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검찰 수사로 회사가 난국에 처한 마당에 노조마저 이를 빌미로 공세를 취하고 있어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라며 "환율 하락 등 경영여건이 어느 때보다 어려운 만큼 임금인상 등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줄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