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자이자 외국인 첫 국립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러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총장의 연임이 28일 무산됐다. 이로써 1년8개월 동안 KAIST 개혁을 목표로 추진해 온 '러플린식 실험'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게 됐다. ◆4시간 마라톤 회의 끝 연임계약하지 않기로=KAIST 이사회는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비공개로 회의를 진행,'5인 총장 업적평가위원회'보고를 듣고 4시간에 걸친 격론을 벌인 끝에 러플린 총장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KAIST측은 대신 러플린 총장을 특임석좌교수(Distinguished Professor)로 임명해 관계를 유지키로 했다.이에 대해 러플린 총장은 "매우 마음이 편안하다.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결정된 만큼 이사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이날 이사회에는 임관 이사장(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을 비롯 정근모 명지대 총장,김영길 한동대 총장 등 15명의 이사 중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을 제외한 14명이 참석했다. 러플린 총장은 취임 2주년이 되는 7월14일까지 총장직을 유지한 뒤 이전에 교수 생활을 했던 미국 스탠퍼드대학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공과에 대한 논란 남겨=러플린 총장은 2004년 7월 KAIST 개혁을 내세우면서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특히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학자가 한국 대학의 총장으로 선임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KAIST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러플린효과'라는 말까지 낳았다. 또 재임 중 부산 과학영재학교 졸업생들 대부분을 KAIST로 유치하는 등 우수 학생들을 끌어오는 데 한몫했고 정부로부터 5년 동안 1000억원의 자금을 지원받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동안 사립대 수준의 등록금 인상,법학 의학 전문대학원 설립 추진 등의 문제로 교수진과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KAIST 교수 400명을 1 대 1로 인터뷰하면서 연구활동에 대한 연구비를 차등 지원하겠다고 밝히는 등 독선적인 행동으로 인해 교수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샀다. 이번 러플린 총장의 하차에 따라 정부와 한국 과학계는 외국인을 구원 투수로 영입해 과학기술 경쟁력과 대학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당초 취지에 큰 손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학 교수들의 집단적인 행동이 큰 힘을 받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국립대학의 개혁 추진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KAIST는 앞으로 5명으로 구성되는 총장후보 선임위원회를 구성,새로운 총장 후보를 신청받고 공개 경쟁을 통해 늦어도 7월 전까지 새 총장을 뽑을 계획이다. 임관 이사장은 이와 관련,차기 총장 후보도 외국인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오춘호·장원락 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