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몰랐을 시절에도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신임 한국은행 총재로 유력한 이성태 한은 부총재가 과거 사석에서 우스개로 던진 말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이 부산상고에 입학했던 1963년 당시 이 부총재는 부동의 전교 1등으로 전교생 사이에서 전설적인 존재였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 '우상'이었던 이 부총재를 결국 향후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을 이끌어 나갈 한은 수장으로 낙점한 셈이다. 당초 금융계에서는 이 부총재를 가장 유력한 차기 한은 총재 후보로 꼽으면서도 노 대통령이 고등학교 2년 선배인 이 부총재를 총재로 임명하기엔 오히려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노 대통령의 고등학교 2년 선배라는 사실이 유일한 단점"이라고 밝힌 데서도 알 수 있듯 부산상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받기엔 아까운 인물이라는 게 한은 내외부의 평가다. 경남 통영에서 태어난 이 부총재는 부산상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이후 1968년 한은에 입사한 이래 자금부 조사부 등 핵심 부서를 두루 거치면서 출중한 실력을 발휘,통화정책에 관련된 주요 통계수치를 줄줄 꿰는 '컴퓨터'로 통했다. 한 한은 고위 관계자는 이 부총재를 '게으른 천재'라고 표현했다. 통화정책에 대한 식견이 탁월해 불필요한 업무 지시는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의미다. 때문에 "이 부총재는 윗사람들보다는 아랫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좋았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이 부총재는 또 한은 내에서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통한다. 이 부총재는 2003년 한은법 개정을 위한 국회 소위에서 정부가 금통위원들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사례가 있다고 폭로,파문을 불러온 적이 있을 정도로 직설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이 부총재는 금융통화 분야에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재테크에 관한한 '젬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반포와 경기도 분당 등에서 살던 이 부총재가 그 지역을 떠나고 나면 어김없이 집값이 크게 뛰자 한때 한은에서는 "이성태가 떠난 지역으로 이사 가면 돈 번다"란 우스개가 나돌기도 했다. 이 부총재는 부인 박경원 여사(55) 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취미로는 축구와 골프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긴다. 골프는 보기 플레이어 정도의 실력이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 [ 이성태 내정자 약력 ] △1945년 6월20일 경남 통영 출생 △1964 부산상업고등학교 졸업 △1968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 졸업 △1988 미 일리노이대 경제학 석사 △1968 한국은행 입행 △1975 자금부 조사역 △1978 서독사무소 △1991 자금부 부부장 △1994 창원지점장 △1995 홍보부장 △1996 관리부장 △1997 기획부장 △1998 조사국장 △2000 부총재보 △2003 부총재 △2006.3.23 총재 내정 [ 주요 발언 ] △과거 한국 경제는 고금리의 폐해를 경험했지만 지금 한국 경제는 저금리의 폐해를 학습하고 있는 상황이다.(2003년 10월 지역본부 강연) △외화자금 유출입 확대는 통화정책 효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2005년 3월 국제세미나) △최근 일부에서 부동산 문제가 국지적 현상이라고 말하지만 전 인구의 30% 이상이 거주하는 수도권의 부동산 문제는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2005년 9월 언론사 주최 강연) △통화정책은 경제주체들의 기대를 통해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통화정책 성공의 열쇠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2006년 2월 세계중앙은행 워크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