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낮 12시30분.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14층의 구내식당.강정원 국민은행장(55)이 비서실장과 단 둘이 점심을 했다. 메뉴는 쇠고기 무국.불과 1시간 전만 해도 강 행장은 국내 금융사에 큰 획을 긋는 초대형 인수·합병(M&A)의 주인공이었다. 여의도 63빌딩 체리홀에서 1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외환은행 대주주인 론스타와 매각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서명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짧은 기자회견 후 카메라 세례를 피해 서둘러 행사장을 빠져나간 강 행장이 구내식당의 쇠고기 무국으로 '끼니를 때운 것'이다. "이렇게 기쁜 날 부행장들과 근사한 곳에서 자축행사를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강 행장은 "부행장들도 할 일이 많은데… 오늘 메뉴가 맛있네요"라고 받았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금융계가 강 행장의 경영 스타일에 주목하고 있다. 과거 20여년간 국내 금융계의 '변방'을 돌다가 불과 5년여 만에 자산 270조원 규모의 초대형 은행 최고경영자(CEO)로 등극한 강 행장.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보스 기질,차가운 머리,권위 등 과거 은행장에게 요구됐던 리더십 유형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그래서 금융계에서는 '강정원식(式) 리더십'이란 새로운 개념이 부각되고 있다. 강 행장은 2000년 5월 도이체방크 한국대표로 일하다가 서울은행의 구조조정 및 매각 '대리인' 자격으로 서울은행장으로 스카우트됐다. 국내 금융계 공식 데뷔였다. 그는 1년반 동안 임무를 성공리에 완수하고 쓸쓸히 금융가를 떠났다. 그로부터 2년 뒤.수십 대 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산 200조원,국내 최대 은행인 국민은행 CEO로 화려하게 컴백한다. 당시 금융계 일각에서는 "30조원(서울은행)의 은행장이 200조원의 대형 은행을 컨트롤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기우(杞優)였다. 강 행장은 부실채권,조직 분열 등으로 휘청거리던 국민은행을 1년여 만에 반석 위에 올려 놓았고 작년에는 2조2000억원의 은행 최고 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17일.취임 후 줄곧 내부 정비에만 힘을 쏟던 강 행장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외환은행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그러자 "큰 딜을 해 본 경험이 부족한 강 행장이 M&A 귀재로 불리는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라는 게 당시 금융계 중론이었다. 그러나 보란 듯이 하나금융을 이겼다. 비결이 뭘까. 강 행장은 작년 11월 말 친구들과의 골프 라운딩 중 생애 첫 홀인원을 기록했다. 동반 플레이어들은 "홀인원하면 3년간 행운이 따른다는데 외환은행 인수는 떼어 놓은 당상이구먼"이라는 덕담을 했다고 한다. 사실 국민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데는 운도 따랐다. 은행의 한 임원은 "론스타의 지분매각 제한이 작년 10월 말 이전에 풀렸더라면 국민은행에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국민은행이 부실정리와 내부정비를 완료했을 때 론스타가 매각을 시작,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행운만일까. 금융권에서는 "자산 270조원의 초대형 은행을 이끌 CEO로서 강 행장의 능력을 주변에서 높이 평가했기 때문"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강 행장의 한 측근 인사는 "카리스마를 갖고 조직을 장악하는 능력보다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이해,그에 따른 은행 경영인으로서의 행동양식과 경영 방식이 국내외 시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이 강 행장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초대형 은행의 탄생과 금융의 글로벌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고 보면 강 행장은 '시대가 낳은 영웅'이라는 평가다. 강 행장은 은행 경영의 '삼권 분립'을 강조한다. "여신심사,영업,지원업무 등을 분리하는 글로벌 스탠더드가 정착돼야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를 감안한 영업을 할 수 있다"며 "그래야 해외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영업하는 '금융수출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인들은 이제 그런 강 행장이 금융수출국으로서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 [ 강정원 행장은‥ ] -1950년 12월 서울 출생 -경기고,미국 다트머스 대학 졸업 -1979년 씨티은행 입사 -1983년 뱅커스 트러스트 근무 -1999년 도이체방크 한국대표 -2000년 서울은행장 -2004년 국민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