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율촌의 김병욱 변호사(50·사진)는 두 가지 변호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한국 변호사고 다른 하나는 호주 변호사다. 외국 변호사 자격을 보유한 한국 변호사들이 대부분 미국 로스쿨 연수를 마치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따는 점을 감안할 때 특이한 셈이다. 한국과 호주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소유한 변호사로는 그가 유일하다. 김 변호사가 호주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게 된 것은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는 1985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김장리 법률사무소에서 3년여간 일하다 88년 국제업무 분야 경험을 쌓기 위해 유학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당초 미국으로 가려고 했으나 유학자격 시험 일정 때문에 호주로 급선회했다. "연말에 있는 시험을 치면 일정상 이듬해 말에나 미국행이 가능해 이를 포기하고 시험을 친 뒤 곧바로 출발할 수 있는 호주를 선택했는데 이게 제 인생을 확 바꿔 버렸습니다." 김 변호사는 당초 3년 안에 호주 변호사 자격증만을 딴 뒤 귀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김 변호사는 낮에는 호주 로펌에서 외국 변호사로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주경야독을 해 왔다. 김 변호사는 이러한 어려움 끝에 지난 99년 시드니대 로스쿨을 수료하며 뉴사우스웨일스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김 변호사의 호주 생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김 변호사의 부인 강영희씨(50)가 그의 호주 생활을 연장시켰다. 산부인과 의사인 강씨가 호주 의사 자격증을 취득해 수 년간 호주에서 진료 경력을 쌓을 때까지 귀국을 미뤘다. "호주 체류가 길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기업들의 호주 관련 법률서비스를 도맡아 하게 됐습니다. 한국과 호주 사정에 밝은 변호사가 드물어 거의 독점이었습니다." 김 변호사는 96년 한국전력과 포스코 등이 1500억원을 공동투자해 호주에 석탄 개발 합작회사를 만든 거래를 성공리에 마쳤고 97년에는 산업은행과 국민은행이 호주 증시에서 300억원을 조달하는 투자를 도왔다. 또 2002년 뤼미에르 건설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에 위치한 호라이즌 골프리조트를 인수하는 거래에 뤼미에르 측의 법률도우미가 되기도 했다. 호주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한국인을 상대로 골프장 회원권을 분양하는 일도 김 변호사 독차지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16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물론 호주 전문변호사인 그에게 각 로펌에서 스카우트 손길이 뻗쳤다. 그는 호주에 있는 동안 관계를 유지해온 변호사가 속한 율촌을 망설이지 않고 택했다. 율촌은 그에게는 낯선 곳이 된 한국에서의 변호사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곳이었고 급성장하는 로펌이었기 때문이다. 김 변호사는 한국에 오자마자 일에 매달렸다.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국의 한도기계와 호주 비숍사의 합작회사 설립 등 호주 관련 법률서비스 수요가 넘치고 있어서다. 국내 최고의 호주전문가가 된 김 변호사의 인기는 요즘 하늘을 찌른다. 지난해 호주와의 연간 무역거래 규모가 12조원을 넘은데다 현재 호주가 먼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요청해올 정도로 양국 간의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정부와 국내 기업들로부터 호주 관련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한국은 호주와의 교역에서 2004년 31억달러,지난해 6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습니다. 호주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만회하려면 FTA 협상을 할 때 호주 내 철광석과 석탄을 먼저 개발할 수 있는 우선권과 호주 인근 해양의 어업권을 요구해야 합니다." '호주통'인 김 변호사는 나라에서 한·호주 FTA 협상 때 부른다면 언제든지 뛰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정인설·사진=허문찬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