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나이엔 봄바람의 설렘을 알았고


서른 살 나이엔 꽃 지는 설움을 알았는데


마흔이 가까워오니 꽃 피는 장관에


눈이 감아지더라


부러진 뼈가 살을 뚫고 튀어나오듯


꽃망울 맺히는 모양에 내가 아픈데


아가리를 좍좍 벌리고


비를 받아먹는 여린 잎들이여


우중에 한껏 부풀어오른 야산을 관망하니


산모처럼 젖이 아프더라


(…)


여자가 쓰는 물건들은


왜 하나같이 움푹 패어 있어


무엇인가 연신 채워 넣도록 생겨먹었는지


이 혹독한 봄날에야


대답을 찾아간다


몽중에 온갖 소원 다 이룰 만치


큰 잠을 잤더라


-김소연 '진달래 시첩'부분




탄생은 늘 고통을 수반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던가.


새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죽음을 예비하고 있다.


시인은 젊은 시절 봄바람에 황홀해 했고 철들 무렵엔 꽃 지는 설움을 알았지만,마흔고개에선 꽃 피는 장관에도 무연히 눈을 감게 된다고 했다.


삶에는 무한한 기쁨이나 슬픔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까.


이제 눈부신 햇살 아래 다시 꽃잔치가 낭자하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에 아파하든 상관없이 성큼성큼 봄은 오고 있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