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세계화 반대시위 소식도 자주 듣는다. 세계화라는 말 자체가 극히 최근에 학술용어로 정착하는 중인 만큼 아직 혼란 가능성이 많은 개념이지만 경제사적으로 간단히 살펴보자. 경제적으로 볼 때 세계화란 '상품시장과 요소(자본,노동)시장이 밀접하게 국제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이다. 세계적 시장 통합 현상은 16세기 대서양 연안 나라들 간,또한 이들과 아시아 나라 간에 있었다. 그러나 교역 상품이 사치품에 국한되었으며 19세기 이전에는 '가격 수렴'도 보이지 않는다. 요즘 말하는 세계화는 19세기 후반 처음 분출했다(1차 세계화). 이후 1차 대전,대공황,2차 대전을 포함한 반세기 동안 세계화가 후퇴하고 경제전쟁,무역장벽,이민 제한,자본 통제,민족주의가 득세했다. 이제 20세기 후반부터 2차 세계화가 확산되고 있다. 상품시장 통합의 정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수출+수입)량의 비율로 측정한다. 이 비율은 19세기 후반,다시 20세기 후반에 급속히 증가했다. 19세기에는 증기선 발달,수에즈 운하 개통,철도 건설 붐,냉장기술 진보 등으로 운송비가 줄었다. 정치적 제도적 근간,즉 무역정책,재산권의 안전성,계약 이행,안정되고 예측 가능한 통화 및 재정정책 등도 마련되었다. 즉 시장이 발달해야 시장 통합이 가능하다. 무역 정책면에서는 영국곡물법 폐지,영불무역협정 등으로 영국 주도 하에 중상주의에서 자유무역 기조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렇게 무역장벽이 잠시 낮춰진 상황이 빚어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1860년대,유럽대륙이 1870년대 후반부터 보호주의로 향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자유무역은 보호주의 흐름 속에서 예외적으로 나타난 조류였다. 경제 개방 의무는 식민지나 주변부 국가들에만 강제로 부과되었다. 이들 나라는 개방을 강요당하며 탈공업화를 겪었다. 20세기에는 19세기에 비해 항공운송비가 크게 줄었는데도 교통비의 감소 속도는 느렸고 상품시장 통합에 기여하는 정도도 작았다. 무역 성장의 주 요인은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낮아지고 정보 소통이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GATT의 최혜국 대우조항,제네바회의부터 우루과이라운드까지 수차례의 다자 간 협상 등으로 무역자유화가 확대되고 세계 무역량도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교역상품 구성에서 1차 산품 비중은 19세기 64%였으나 20세기에는 18%로 줄었다. 또한 1970년대부터 아웃소싱 같은 방식으로 산업 내 무역이 급성장했다. 상품시장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이로 인해 피해 보는 집단이 생기게 마련이다. 무역이 이뤄지면 수입 대체부문과 희소생산 요소,달리 보면 우물 안 개구리 부문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와 연루된 집단의 반발이 쌓이다 보면 세계화가 후퇴할 수 있다. 이미 1880년대 말 1차 세계화 후퇴 조짐이 있었다. 세계화 역학 속에는 이를 파괴시킬 씨앗도 함께 잉태되어 있다고나 할까. 오늘날 시장통합은 100년 전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 강력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세계화가 후퇴할 심각한 징조는 아직 없다. GDP 가운데 교역 불가능 품목(nontradables) 비율이 커지고,농업 비중이 크게 줄고,손실부문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주의가 세계화 경제의 원만한 운행을 위협하고 있다. 다자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미국이 1980년대 중엽 이후 지역주의 추세의 선봉이 되었다. 미국은 캐나다,멕시코와 NAFTA를 만들었으며 라틴아메리카와 전 미주 자유무역지역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EU도 회원국을 계속 늘리며 단일 통화를 도입했다. 다른 지역에서도 방어 블록을 형성하는 형태로 지역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인근에 있지 않은 나라끼리의 협정도 증가하면서 2005년 말 현재 발효 중인 FTA는 186개다. WTO와 도하개발아젠다도 지역주의 때문에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역화된 세계 경제는 많은 저개발국을 배제하고 그들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거나 지연시킬 것이다. 지역주의는 또한 비회원국과의 무역을 중단시키고 회원국으로 무역 전환(trade diversion) 및 투자 전환을 초래해 경제적 효율 달성을 방해한다.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가 큰 나라들이 지역 통합을 이루면 그에 근거한 강대국의 약소국 지배 및 착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칠레,싱가포르에 이어 미국 등 여러 국과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화가 주춤하고 지역주의가 대세라면 그 추세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단기적 이득과 장기적 세계후생을 저울질해 봄 직하다. 성장과 번영은 다자 간 무역,국제 금융 협력이 존재하는 시기에 달성되는 것이지 쌍무무역,갈등적인 통화지역 등이 난무할 때 찾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할 역사적 근거는 아주 많다. 서울대 경제학 dya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