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륙 아프리카 중서부에 자리잡은 나이지리아. 인구 1억4000만명의 대국으로 세계 11위의 산유국이다. 그러나 석유제품을 역수입할 정도로 원유채굴 외에는 이렇다 할 산업기반이 없는 빈국이다. 상위 5% 미만이 생산시설의 90% 이상을 장악할 정도로 사회구조도 열악하다.


이런 나라를 김일권씨(45)가 찾은 것은 1994년 3월. 김씨는 경방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고향인 전남 광주에서 봉제공장을 하다 거의 거덜난 최악의 상황이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이 물밀듯이 들어오는 바람에 섬유로 독립한다는 꿈은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벼랑 끝에 선 상황에서 나이지리아에서 먼저 자리잡고 있던 아내 친구가 '사업을 해볼 만한 곳'이라며 권유를 해왔어요. 한줄기 희망의 빛처럼 보이더라고요."


나이지리아 현지시장을 살펴보니 무슨 품목을 하든 두 배 장사는 될 것도 같았지만 막상 품목을 정하기는 쉽지 않아 한동안 망설였다.


장고 끝에 중고오토바이를 수입하면서 정착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1995년부터 그는 처음엔 한국에서,나중엔 중국에서 중고오토바이를 수입해 나이지리아 시장에 풀었다. 한 컨테이너에 200대씩 싣고 오기가 무섭게 팔려나갔고,많이 남으면 컨테이너 한 대에서 4000만원가량 이익이 났다고 한다. 그는 3만대를 팔았다.


조금 돈이 된다 싶자 경쟁자들이 주르르 몰려들어 고심 끝에 업종을 바꾸기로 했다. 바꾼 업종은 플라스틱 성형 기계류 수입. 그는 기계 수입을 위해 '유컴스'라는 무역회사를,석유화학 생활용품 생산을 위해 '코리아나'라는 제조업체를 나란히 운영한다. 코리아나에서는 플라스틱 파이프,물통,쇼핑백 등 생활에 쓰이는 제품을 만든다. 두 곳에서 한국직원 3명,중국직원 1명,현지인 80여명이 일한다.


2002년부터 또 다른 데 관심을 돌리고 있다. 이번엔 건설업이다. 2002년 호텔 공사를 하나 따냈지만 재미를 못 봤다. 비싼 건설업 수업료를 낸 김씨는 올해부터 고급 조립주택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나이지리아는 '세계 3대 사기 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사기꾼들이 판을 치는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김씨가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비결은 뭘까.


"역지사지,거꾸로 생각하면 사기당할 이유가 없어요.그럴듯한 소개문 하나로 '까짓것 500만원 정도야 하룻밤 술값으로 날려버리는 셈 치지'라면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 보지도 않고 손쉽게 거래를 하다 낭패를 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기초적인 것조차 알아보지 않고 거래를 서두르는 피해자들도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은 김씨도 그동안 이런저런 사기에 걸려 우리 돈으로 5억원 정도 날렸지만 현지 정착금을 낸 것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사업을 하려면 처음 3년은 사업분위기 배우기,다음 3년은 투자금 회복기,그 다음부터 수익내기라는 식으로 길게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김 사장이 설파하는 나이지리아 비즈니스론은 '물주기 3년,거름주기 3년'이라는 난(蘭)치기를 연상시킨다.


"나이지리아에 온 지 10년---나름대로 각고 끝에 이제 제법 터전을 닦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사장은 임대해 쓰고 있는 공장부지를 올해 중 아예 사들인다는 계획이고,한국에서 진 빚도 그간 모두 정리했다.


그는 한국인들의 현지 진출을 적극 권장했다.


"아직 모든 면에서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나라이고,한국에서 쌓은 경험에다 조금만 머리 쓰고 열심히 하면 충분히 길이 있습니다.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도 좋은 데다 한국과 멀리 떨어져 있어 한국인들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도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다는 얘깁니다."


그는 현지 한인친목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사업이 번창하면서 골프도 배워 싱글핸디캡이 됐다. 지난해에는 아들(12)을 영국으로 유학 보냈다. 아들이 프로 골프의 길을 택할지,일반적인 공부를 하게 할지 가족들이 상의해서 올해 중 결정할 예정이다.


김 사장은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아내가 런던에 가 있는 바람에 '검은 대륙의 황색 기러기' 신세가 됐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아부자(나이지리아)=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