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李총리 사의 수용] 전방위 압박에 '白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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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이해찬 총리의 사퇴 의사를 전격 수용한 것은 여당에서조차 사퇴불가피론을 들고 나오는 등 여론의 총체적 압박을 더이상 거부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14일 오후 1시간여 동안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예방을 받고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다"며 사의 수용 의사를 밝혔다.
사퇴가 대세로 가닥잡힌 상황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이 총리와의 면담 때 즉각 사의를 수용하지 않았던 것은 이 문제가 단순히 내각의 총괄자,행정부의 2인자를 교체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 초기까지만 해도 이 총리를 껴안고 가려던 노 대통령의 의중에 반해 여당에서도 '총리사퇴'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 되면서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행정부와 열린우리당과의 관계 재정립은 불가피해 보인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어려울 때 거들어주지 않는 여당에 불만과 불신이 생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직까지는 아무도 입밖에 내진 않고 있지만 5·31 지방선거 전 노 대통령의 탈당,올해 후반기께 거국내각 구성 제안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같은 정치적 포석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노 대통령은 올해 중에 △정치적 색채가 없는 인사로 일단 총리 기용 △초당적 국정운영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 탈당 △연말께 여당출신 장관 전원 복귀 및 거국내각 시도의 수순으로 나갈 수도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다.
내각의 운용방식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행정부에서 예상되는 가장 큰 변화는 '분권형 총리체제'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를 기용하면서 웬만한 국정은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천명했었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고령화·저출산 문제,에너지 정책,공직사회의 투명성 강화 방안 등 3대 중장기 과제만 챙기겠다고 밝혔었다.
이후에도 노 대통령은 '천생연분'이라며 계속해 총리에게 힘을 더 실어줬고,웬만한 국정현안에 대한 여당과 당정협의는 물론 인사에서도 총리의 비중은 과거 어느 때보다 커졌다.
특히 장관인사에서는 총리의 각료제청권이 실질적으로 행사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이런 '분업시스템'하에서 노 대통령은 "남은 2년 몰두할 국정과제는 양극화 해소와 한·미 간 FTA"라고 천명했는데 총리가 전격 낙마하는 난관에 처한 것이다.
분권형 총리체제는 이해찬 총리를 전제로 했던 것인 만큼 총리가 바뀌면 노 대통령이 구상해온 중장기 국정과제는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진다.
현실적으로 역량과 충성심에서 이 총리만큼 믿고 맡기며 2인자 자리를 줄 인사를 물색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노 대통령은 15일 환경부 장관,공정거래위원장 등에 대한 총리의 제청권행사가 끝나면 이 총리의 사표를 수리할 예정이다.
이어 한덕수 경제부총리에게 대행역할을 맡기면서 후임 총리 인선에 나서는 한편 총리인선과 남은 임기 동안 정국운영을 연계시키는 방안을 놓고 또한번 숙고에 들어갈 전망이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이해찬 총리의 골프 로비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해 주목된다.
노 대통령은 정 의장과 면담 이후 이 실장에게 "이번 사건과 관련해 관계기관은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의혹을 명확하게 밝혀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허원순 기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