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데스크] '관시' 시대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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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선 매년 3월 그 해의 국정운영 방향을 담고 있는 '정부 업무 보고안'이 전인대(全人大·국회) 전체회의의 승인을 받는다.
지난해 세계 4위 경제 대국으로 두 계단이나 올라선 중국의 위상 때문일까.
10기 전인대 4차 전체회의 개막식이 열린 지난 5일.외신기자들은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정부 업무 보고를 하기 30분 전에 배포된 문건을 보면서 휴대폰을 들고 내용을 전하느라 바빴다.
예년보다 강한 톤의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올해 뇌물 특별 정돈 사업을 집중적으로 벌이겠습니다." 부패척결은 정부업무 보고의 단골메뉴다.
하지만 건설 토지양도 정부조달 약품매매 등 구체적인 분야까지 적시하며 뇌물 문제를 중점적으로 단속하겠다는 말에서 과거보다 사뭇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원 총리의 뇌물 단속 발언은 시간이 가면서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원 총리는 지난 2월에만 뇌물수수 근절을 두 차례의 회의에서 언급했다.
이어 3월 초엔 상무부 등 22개 부처가 공동으로 '반(反)뇌물 캠페인'을 벌인다고 발표했다.
관영 영자지 차이나데일리는 이 같은 움직임이 기업과 개인의 비즈니스 방식을 바꿀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지도부가 입에 달고 다니는 경제 성장방식 변화의 하나로 '뇌물수수를 당연시하는 왜곡된 관시(關係) 문화'가 타깃에 오른 셈이다.
문제는 중국 사업을 벌이는 외국기업 역시 그 변화의 영향권에 있다는 데 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국 당국에 적발된 50만위안(약 6250만원) 이상의 부정부패 사건 중 64%가 외국기업과 관련돼 있다.
'왜곡된 현지화'를 한 탓에 망신살이 뻗친 외국기업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해 5월 미국 의료장비업체인 DPC가 중국 병원에 10년에 걸쳐 뇌물을 준게 들통난 것이나,세계 최대 할인점업체인 월마트가 쿤밍시에 진출하면서 관계 공무원의 부인에게 뇌물을 준 사건은 중국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며 회사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혔다.
중국언론들은 "부패,외국기업 생존의 숨겨진 규칙" "외국기업,뇌물로 시장을 산다"며 부패한 외국기업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중국에서 뇌물은 판촉비 찬조비 자문비 등의 명목으로 제공되는 현금은 물론 각종 여행시찰도 해당된다고 중국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외자를 숭배시해오던 데서 탈피,외국 기업에 엄격한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게 요즘 중국의 사회 분위기다.
게다가 입법이 추진중인 형법 개정안은 뇌물수수 처벌대상을 협회 학교 병원 등과 같은 일반 기관의 종사자로 확대하고 있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국의 한 기업인은 "중국의 협회 관계자들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식으로 관시를 맺어 수주 정보를 얻는 게 관행화돼 있었는데 앞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총리의 뇌물수수 특별 정돈 발언은 왜곡된 관시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다.
리베이트와 같은 탁자 밑 검은 거래와 뇌물수수를 중국 특유의 관시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관행이 철퇴를 맞게 되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도 중국 현지화 경영전략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
오광진 베이징 특파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