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취업문을 뚫고 한 배를 탄 대기업 신입사원들.낙오자 없이 4년 만에 함께 대리를 달고 대부분 과장으로 승진했던 과거에는 동기 간 유대감도 깊었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예전 같지 않다.


대리 승진에서도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입사 2,3년차에 이르면 끈끈했던 동기애는 경쟁의식으로 변하고 만다.


1999년 입사한 D사의 박모 대리(36)는 지난달 과장 진급에서 '물'을 먹었다.


입사 동기 47명을 포함해 승진 대상에 올랐던 '대리'들은 모두 60명.이 가운데 무려 18명이 '대리'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누락자 수는 지난해(승진 대상 50명 중 8명)보다 더 늘었다.


박 대리는 "업무 평가에서 남들보다 처진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막상 미끄러지니까 일할 맛이 안 난다"며 "임원 승진도 아닌 과장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H사의 정모 사원(31)은 최근 인사에서 대리로 승진하지 못해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36명의 동기 가운데 자신을 포함해 2명만이 누락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집에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대리가 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창피해서 어떻게 회사를 다닐 수 있겠냐"며 한숨을 토해냈다.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승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는 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하지 못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이 초급 사원 단계에서부터 성과에 따른 인사를 적용하면서 "대리나 과장은 큰 잘못 없이 연수만 채우면 될 수 있다"는 말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기업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과장 승진 탈락률은 20∼30%,대리 승진 탈락률도 10%까지 높아졌다.


취업 희망 1순위 기업인 삼성전자의 경우 1990년대 말까지 입사 4년차가 되면 대부분이 대리로 승진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리 승진 대상자들 가운데 누락자 비중이 조금씩 늘기 시작,올해의 경우 전체 대상자의 10% 정도가 승진에서 탈락했다.


과장 진급 누락률은 20%에 이른다.


LG화학은 올해 과장 승진 대상자 200여명 가운데 80여명이 승진하지 못해 탈락률이 40%에 육박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승진 대상자 절반 정도가 대리 및 과장 승진에서 탈락할 정도다.


지난해에는 과장 승진 대상자 600명 가운데 300명이,대리 승진 대상자 170명 가운데 90명이 분루를 삼켰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대리나 과장 승진에서도 탈락자가 나와야 조직에 긴장감도 생기고 경쟁을 통해 성과도 달성할 수 있다"면서 "승진에서 누락된 직원들 중 일부가 퇴사하는 사례가 있긴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고 설명한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