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도 히노시에 있는 도요타 계열 상용차 회사인 히노자동차.일본 내 시장점유율 1위인 이 회사는 여느 트럭 공장과 분위기가 다르다. 한 개 생산라인에서 모양과 크기,색상이 모두 다른 트럭들이 동시에 조립되고 있다. 조립이 끝나 차고로 운반되는 트럭들의 앞 유리엔 이름표가 하나씩 붙어 있다. 이 회사에 트럭 생산을 주문한 차주의 이름이다. "승용차 공장에선 흔한 모습이지만 트럭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것은 다른 상용차 회사 공장에서는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물론 재고는 한 대도 없지요." (요시다 주니치 히노자동차 홍보팀장) 도요타가 이 회사를 인수한 2001년까지만 해도 히노자동차는 공장 인근의 차고를 가득 채울 정도로 재고가 많았다. 주문 생산이 아니라 수요량을 예측해 미리 생산하는 예상 생산체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법인 수요가 몰리는 3월과 9월에만 흑자가 났다. 나머지 10개월은 적자 행진.'수요기' 직전에는 재고만 만대가 넘을 때도 있었다. 수익을 악화시킨 것은 재고 비용뿐이 아니었다. 판매 예상이 어긋나면 가격을 대폭 내리거나 수요가 많은 차형으로 개조해야 했다. 2001년 히노의 경영권을 인수한 도요타가 구원투수로 등판시킨 사람은 아이치현의 렉서스 공장 설립을 도맡았던 자가와 다다아키 부사장.도요타 내의 대표적인 엔지니어 출신 겐바(현장) 전문가였다. 히노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선 현장 경쟁력을 살려야 한다는 도요타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그는 히노자동차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 특기인 현장을 중심으로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예상 생산체제에서 수주 생산체제로의 전환이었지요. 예상 생산은 트럭회사의 오랜 관행입니다. 관행을 깨고 공장의 생산 스케줄을 바꾸자 현장에서 불만이 쏟아졌지요. 수요가 몰리는 3월과 9월에는 휴일도 반납해야 할 정도로 바쁘고 4월과 10월에는 일손을 놓아야 했으니까요."(자가와 회장) 엔지니어 출신인 자가와 회장은 현장을 독려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회사의 방침을 일괄적으로 전달하기보다 8000명이나 되는 종업원을 한명 한명 대면하며 회사의 현재 사정과 개혁 후의 비전을 설명했다. 그의 노력에 현장이 화답하기 시작했다. 2001년 100억엔 이상의 적자를 냈던 히노자동차는 2002년 90억엔 가까운 흑자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176억엔의 흑자를 내는 우량기업으로 탈바꿈했다. 현장 개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직선라인이었던 생산라인을 둥근 라운드형으로 바꾼 것.주문생산 방식에서 제대로 된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 사람이 트럭 한 대의 품질을 책임져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직선라인에서는 나사를 조이는 사람이 하루종일 나사만 조이는 단순업무를 했지만 라운드형으로 바꾸자 '내가 책임지고 트럭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늘어났지요. 일본인 특유의 모노즈쿠리(만드는 물건에 혼을 불어넣고 제조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일본인들의 정신을 통칭)를 되살린 것입니다."(요시다 팀장) 컨베어라인을 아예 철거한 캐논의 '셀 생산방식'도 모노즈쿠리를 통해 현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개혁이었다. 컨베어벨트에 붙어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던 방식에서 한 사람이 책임지고 물건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들은 자기가 만든 제품에 도장을 찍고 직접 설치까지 도맡습니다. 자연스럽게 캐논의 품질은 향상됐고 설비투자 비용은 훨씬 줄어들었지요. 증산이나 감산에도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습니다."(시노자키 도마카스 캐논 홍보과장)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사장도 작업자들과 직접 대화하는 방식으로 현장의 저항을 극복했다. 현장을 일일이 다니며 이 개혁의 목적과 방향을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양이 경영의 질을 좌우한다"는 미타라이 사장의 말은 현장 중심 경영에 대한 그의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쿄=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