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부끄러운 '게임 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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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도용은 2000년부터 시작됐고 2004년부터는 경찰 수사가 계속됐는데 정부와 해당업체가 실상을 모를 리 없다."
온라인게임 '리니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명의도용 사건과 관련,지난 17일 한국경제신문과 고백성 인터뷰를 한 리니지 성주(城主) K씨는 "리니지 명의도용 사태는 정부와 업체의 합작품"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게임 경력 10년으로 안해본 게임이 없다는 K씨는 "경찰이 지난해에도 대대적으로 소탕작전을 벌였고 명의도용의 심각성도 인지했을 것"이라며 "그러고도 가만히 있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리니지 명의도용 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초대형 '사이버 범죄'이다.
이미 신고한 사람과 신고를 채 못한 사람,명의를 도용당하고도 아직 모르고 있는 사람을 더하면 피해자는 10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정부와 해당업체인 엔씨소프트는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한 채 파문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는 눈치다.
이번 명의도용 사건은 남의 주민번호로 계정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구조에서 비롯됐다.
한국 온라인게임은 개인의 실력보다 아이템(총 칼 등 무기)의 능력치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이에 따라 능력치 높은 아이템을 원하는 수요가 생겼고 여기에 맞춰 공급이 생겨났다.
공급책들이 무차별적으로 주민번호를 수집해 아이템 거래용 계정을 만드는 사이에 정부와 해당업체는 뭘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입만 열면 '온라인게임 강국'이라고 자랑하고 자기 관할이라고 밥그릇 다툼을 하던 정보통신부와 문화관광부는 사태가 터지자 남의 집 불구경하듯 방관하고 있다.
명의도용 피해자는 10만명,20만명,30만명으로 불어났고 대한민국 국민의 주민번호가 전세계 암시장에서 둥둥 떠다니는 지경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아이템으로 돈벌이를 하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명의도용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금도 "내 명의를 어떻게 하면 뺄 수 있느냐"고 묻는 독자들의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온라인게임 강국'이란 구호가 부끄럽기만 하다.
임원기 IT부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