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부 광동제약 회장(71)은 업계에서 '미다스의 혀'로 통한다.


비타500의 대박은 그의 혀끝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 "미각 하나는 타고났다"고 밝힌다.


쌍화탕과 광동탕도 모두 그의 혀를 거쳐 탄생했다.


최 회장은 비타500의 '마시는 비타민' 컨셉트가 아무리 신선하다고 해도 맛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개발팀에 첫맛과 끝맛,목넘김과 마시고 난 후의 잔존감까지 완벽한 제품을 주문했다.


이 기준에 조금이라도 못 미칠 경우 가차없이 퇴짜를 가하는 '최씨 고집'을 부렸다.


개발팀은 8개월간 감귤,파인애플,사과 등 궁합이 맞을 법한 과일을 총동원하고서야 겨우 그의 입맛을 맞출 수 있었다.


최 회장도 처음에는 비타500이 이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비타500에 대해 상표와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제품 출시 후 40여개의 유사제품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도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결국 최 회장의 혀를 거친 비타500의 손을 들어줬다.


최씨 고집의 승리였다.


그의 고집이 항상 성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IMF사태 당시 1차 부도를 촉발시킨 계기가 됐던 조선무약과의 '쌍화탕 전쟁'이 그 예다.


지난 75년 이후 줄곧 광동제약이 1위를 달려온 쌍화탕 시장에 조선무약이 85년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 발단이었다.


이에 최 회장은 자사 제품의 가격을 내리는 전략으로 맞섰다.


조선무약 역시 가격을 내리면서 맞불작전을 펼쳤다.


양측은 나중에는 제품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한달 손실액만 6억~7억원에 이르는 말그대로 '출혈경쟁'이 이어졌다.


이러한 싸움은 97년까지 12년간 계속됐다.


결국 IMF 사태가 터지고서야 양측의 경쟁은 끝을 맺었다.


비타500으로 빛을 보기도 전에 막을 내릴 뻔한 것이다.


최 회장은 요즘 고집이 많이 수그러들었다.


예전처럼 신제품에 대해 자신의 입맛을 끝까지 고집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입맛이 둔감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도 매주 두차례 필드로 나가 골프를 치는 등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회사에도 월수금 3일은 꼭 출근해 외아들인 최성원 사장을 도와큰 업무를 챙긴다.


"일을 해야 늙지 않는다"는 그의 고집만큼은 여전하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