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는 최근 인천경제자유구역(IFEZ)송도지구에 약 55만평(여의도의 60% 크기)의 제3 캠퍼스 및 국제화복합단지를 건립하기로 지난달 말 인천시와 전격 합의한 뒤 주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명문 사립대학이 기존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하게 '혁신의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대학들이 처한 현실은 '사면초가(四面楚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교 졸업생 수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우수한 신입생 확보를 위한 대학 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게다가 교육개방을 앞두고 국제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며 사립대의 경우 재정 건전화라는 피할 수 없는 숙제도 갖고 있다.
3不(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 금지) 정책에 기반한 정부의 통제와 감시 아래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2004년 4월부터 총장직을 맡아 어느덧 임기 절반을 향해 달리고 있는 있는 정창영 연세대 총장(62)을 만나 연세대 및 국내 대학들의 현실과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연세대 송도캠퍼스 계획이 발표되면서 다른 대학과 예비 수험생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인천시와 실무 접촉에 들어간 뒤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왔다.
원래 캠퍼스 확장 문제는 기획실장으로 근무했던 10여년 전부터 검토해온 것이다.
당초 통일시대를 염두에 두고 파주 문산 등을 고려했다.
그러나 신촌 본교에서 지리적으로 가깝고 동북아의 중심지로 적합한 송도가 최종 결정됐다.
인천공항과 인천은 중국의 상하이 푸둥 지방 등과 경쟁하면서 21세기 '한국의 창'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는 서울이 중심이고 인천은 위성도시로 인식되지만 세월이 지나면 변할 수 있다."
-송도캠퍼스는 연세대의 국제화를 염두에 둔 결정일 텐데.
"우리 학생을 해외로 내보내기만 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의 시대는 갔다.
이제 해외에서 학생을 유치해오는 '인바운드(Inbound)'에 나서야 할 때다.
이미 국내 고급 인재들을 하버드 예일 스탠퍼드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The Ivy League) 학교로 빼앗기고 있는 실정이다.
연세대는 이 같은 최상위층 학생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끌어들일 계획이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이공계 전공자를 중심으로 선·후진국의 외국 학부생들을 1000~2000명가량 유치해 내국인 학생들과 자유롭게 섞이도록 하겠다.
연세대는 교육시장 개방을 전혀 겁내지 않는다.
경쟁할수록 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2010년 신입생부터는 모두 송도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다.
어떤 의미를 갖나.
"'기숙대학(Residental College)'을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학생들의 학업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04년 하버드대의 커리큘럼 개편추진 방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계 선진대학들은 학부생들이 문학, 철학, 역사, 기초과학 등 기본 교양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경제학과에서 세부적인 분야를 전공한 뒤 기업에 취직했더라도 변화 흐름이 빠른 업종이라면 4~5년만 지나도 배운 지식이 '뒤처진 내용'으로 전락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이 중요하다.
HP의 전문경영인이었던 칼리 피오리나도 전공이 중세사 아니었나.
연세대는 2학년 전공 선택 이전까지의 학부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은 양의 독서를 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문·이과생이 함께 생활하면서 학과의 경계를 뛰어넘어 보다 폭넓은 지적 안목을 구비하고 다양한 인간관계를 형성토록 유도하겠다.
장기적으로 (이 같은 흐름이) 국내 학부대학의 나아가야 할 좌표라고 본다."
-의·치학전문대학원(메디컬스쿨),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경영전문대학원(비즈니스스쿨) 등 전문 대학원이 도입된다.
이를 놓고 찬반논쟁도 많았다.
"이미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전문학교(Professional School)들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방향이다.
과열 대입경쟁도 다소 완화될 수 있다.
특히 메디컬스쿨의 경우 국내에서는 그동안 임상의만 강조해 온 경향이 짙었는데 다양한 학부 전공자가 입학하면서 '생의학 연구(bio-medical research)'인력 부문도 강화될 것으로 본다.
현재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에 있는 유명 의과대학의 경우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연세대는 메디컬스쿨 도입에 왜 뒤늦게 합류했는가.
"(웃음) 큰 방향은 세웠어도 해당 단과 대학에서 여러가지 협의할 것이 많았다."
-2006년 대입 정시모집에서 연세대학교의 논술문제가 가장 난해하고 어려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8년 수능시험부터 점수 대신 등급제로 전환되는 등 입시제도가 바뀌게 된다.
"내년에는 좀 더 수험생들이 쉽게 쓰도록 논술문제를 배려하겠다.
대학이 무조건 우수 학생만 뽑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대학은 도시 농촌 간 격차와 공교육 정상화 등을 고려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을 믿지 못하겠다고 자꾸 간섭을 하니 대학은 다른 자료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정부의 교육정책이 지나치게 형평성 등 국가 내부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야 한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교육이다.
미국을 봐라.공장에선 세계 일류의 제품을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인재는 제대로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실정이다.
-향후 목표는.
"국내 10여개 대학 정도는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대학'이 되어야 한다.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수단은 다른 곳에서 찾아도 된다.
연대의 경우 지난해 이과 공과 의학 분야 교수들의 네이처 사이언스 등 과학논문인용색인(SCI) 논문 게재 편수를 따지면 세계 132위였다.
2010년까지는 50위권 진입이 목표다.
또 바이오 메디컬,천문우주,의학기기,한국학,이동통신 등 5개 분야에서 5년 내 세계 10위권 안에 들겠다."
-최근 12% 등록금 인상안을 놓고 총학생회와 대립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의 타당성을 알리는 광고를 지난달 게재했을 정도다.
현재 진행 중인 도서관 건립,계획 중인 송도캠퍼스 확장 등으로 지출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정상태는 어떤가.
"교육·연구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지출은 지속되는 가운데 모든 사립대학이 그런 것처럼 수입의 원천은 등록금,기부금,재단전입금,정부지원 등으로 제한돼 있어 자금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한다.
(실제 연세대의 경상수지 적자는 수 백억원에 이른다.) 연세대는 25개 주요 사립대 중 등록금 수준이 18위로 하위에 머물러 있어 높은 수준의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교직원은 봉급을 동결하고 각종 보직수당을 학교의 새 도서관 건립을 위해 기부했다.
관리운영비 10% 삭감도 협의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외부 강연은 잘 하지 않고 기금모금 등을 위해 동문들과 기업체 인사를 만나는 데 스케줄의 상당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글=문혜정 김정욱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