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은씨(25)는 '인생 한방'주의자다.


대학 때 '취업준비'라는 것을 따로 해본 적이 없지만 2004년 KPR가 주최한 '대학생PR공모전' 대상 입상으로 '한방에' 좁은 취업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살았기에 그녀는 수천명이 몰려드는 공모전에서 첫손에 꼽히는 작품을 내놓아 지금은 많은 여대생들이 선망하는 유명 홍보대행사의 AE(Account Executive·홍보담당자)가 될 수 있었을까.


외환위기의 먹구름이 캠퍼스에 청년실업이라는 그늘을 짙게 드리우던 지난 2000년,숙명여대에 입학한 그녀는 우선 7개의 동아리와 인터넷 동호회에 들었다.


친구들이 강의실과 도서관을 전전하고,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만 골라 가입하는 동안에도 이씨는 시문학회,자원봉사 동아리,철학모임 등 '빌어먹기 딱 좋은' 곳만 주로 찾아다녔다.


"가입한 동아리의 이름을 듣고 대학시절의 기억을 떠올려 보시면 아시겠지만,대부분 모여서 술마시고 이야기하는 것이 주(主)목적인 모임들이었습니다." 일곱 군데서 동시에 활동하다 보니 각각 일주일에 한 번씩만 모인다고 쳐도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 놀아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이씨는 그때의 경험이 지금 AE 생활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한다.


"홍보는 사람 장사입니다.


대행계약 체결을 위해 고객사를 설득할 때,또 고객사를 위해 언론인을 만날 때 등 정말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납니다.


그럴 때 대학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폭넓게 어울리며 쌓은 대화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죠.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도 그때 갈고 닦은 '내공' 덕을 톡톡히 봤어요."


실제로 공모전 결선 프레젠테이션(PT) 심사를 맡았던 김은영 KPR 헬스케어팀 차장은 "이지은씨는 일단 사람을 쳐다보는 시선부터 부드럽고 여유로웠다"며 "PT가 벌어지는 동안 심사위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루 시선을 주며 자신의 홍보 아이디어를 소개했는데,아이디어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태도 점수로 상당한 가점을 줬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홍보맨이 가진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조금은 특별하게 포장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차장의 생각이다.


이씨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내내 방학이면 시집을 끼고 여행을 다녔다.


다른 이들이 토익점수를 올리고,컴퓨터 자격증을 따며 취업으로 가는 대장정을 떠날 때 그녀는 '학원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독특한 경험을 쌓는 일에 몰두했다.


"그때 읽은 시어들은 샘이 깊은 물처럼 지금도 제 가슴 속에 촘촘히 남아 있고,그때 본 풍경들은 뿌리 깊은 나무처럼 홍보쟁이로 일하는 제게 창의력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공모전을 통해 '한방' 취업에 성공한 그녀는 지난해 말 일에서도 큰것 한방을 보여줬다.


대학 부설 요리아카데미의 홍보 대행 계약을 혼자 힘으로 성공시킨 것이다.


입사 초년차 신입 AE가 한 달에 1000만원짜리 계약을 따서 돌아오자 다른 홍보대행사에 소문이 쫙 퍼진 것은 물론이고,'꾼'들만 모인 이씨의 회사 내에서조차 술렁거리는 분위기였다고.


이씨는 '한탕주의자'와 자신과 같은 '한방'주의자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남들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한 사람이 그냥 같은 길을 따라가면서 요행으로 성공하길 바라서는 안 되죠.다만 조금 다르게,하지만 더욱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인생도 멋지지 않나요?"


글=차기현ㆍ사진=허문찬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