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홍 LS그룹 회장(60)에게는 멜빵 바지가 무척이나 어울렸다.


운동과 절제로 가다듬은 몸은 올해 환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 회장은 "4년 전에 시작한 명상 호흡법 덕분에 장이 튼튼해지고 고질이었던 어깨통증도 사라졌다"며 "저 또한 스스로 '변화를 꿈꾸는 젊은이'와 같은 자세로 살아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즘 구 회장은 지난해 3월 LG에서 계열분리돼 그룹으로 공식 출범한 LS그룹에 고유의 기업문화를 정착시키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동안 경영인으로서 쌓아온 경험과 창의성을 모두 쏟아붓겠다는 각오다.


"개별 사업엔 일일이 간여하지 않지만 LS전선과 LS산전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디자인하고 전파하는 일이 저의 책무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은 디자인에 달려 있다고 봐요.


인생도 그렇고 사업은 더더욱 그렇지요."


구 회장은 남들이 은퇴를 준비하는 환갑에 새로운 기업을 맡아 '디자인'을 하게된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동시에 뭔가를 배울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갖게된 점은 무척 행운이라고 즐거워 했다.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룹의 미래와 관련해 그리고 있는 그림은.


"오너의 독단과 전횡이 배제된 이사회 중심의 경영,상명하복식의 의사결정을 가름하는 상호존중의 기업문화,그리고 구성원 모두가 존중하고 따르는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재임 기간 중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 5년,10년이 걸리더라도 LS그룹은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회장이라고 기업문화나 가치,경영원칙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지나갔어요."


-과거 LG전자 대표이사 재직시절 '펀(fun)경영'을 강조했는데.


"제가 직접 '펀경영'이라는 말을 한 적은 없어요.


홍보하는 사람들이 제 얘기를 종합해 만든 거지요.


사실 '펀경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직장'이라는 정도로는 제가 생각하는 뜻을 전달할 수 없거든요.


설명을 하자면 '동료직원이나 상하 간에 서로 인정해주고 정을 나누자.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게 되고 기업의 경쟁력도 올라갈 수 있다.'이런 얘기예요.


이런 걸 굳이 한마디로 표현하면 '상호존중'정도가 아닐까요."


-LG전자처럼 덩치가 큰 기업을 경영하다가 LS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을 맡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차이를 느끼는지.


"LS의 뿌리가 LG인 만큼 앞으로도 LG의 기업문화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또 개인적으로 LS그룹이 순조롭게 독립하는 과정에서 조화와 협력의 LG문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LG는 정말 좋은 기업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LS의 기업문화가 갈수록 차별화될 것이라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LG와 주주가 다르고 사업환경도 다르지 않습니까.


다만 경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LG와 LS는 큰 차이가 없어요.


톱경영자라고 해봐야 어차피 회사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의 20%도 알지 못하거든요.


다만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와 폭은 다르지요.


기억해야 할 일의 종류도 그렇고요."


-지난 1999년 LG전자 부회장 시절에 '디지털 LG'를 선포하면서 차세대 디지털 경영자로 주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최근의 정보기술(IT) 업계의 흐름을 어떻게 봅니까.


"휴대폰 하나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을 해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참 편하고 즐거운 일이지요.


하지만 휴대폰 때문에 불편한 일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도 많고요.


IT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IT가 결코 채워주지 못하는 욕구도 있습니다.


일종의 아날로그적 갈증이지요.


고즈넉한 곳에서의 사색,정서적 유대와 만족감 같은 것 말입니다."


-디지털 만능시대에 아날로그적 갈증을 느낀다는 말씀 같은데.


"명상호흡에 심취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생각입니다.


명상호흡과 디지털 경영은 무척 이율배반적이지만 의외로 상호 보완적이죠. 일상이 바쁘고 고단할수록 잠시 시간을 내 느린 호흡으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조일훈·김형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