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넘겨 돌아온 70년대 중동 신화 주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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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통 같은 무더위와 외로움도 그들을 막지 못했다.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이 중요할 뿐이었다.
환갑을 한참 넘긴 나이에 중동 현장으로 돌아와 황혼의 열정을 불사르는 '노병'들이 있어 화제다.
모두 '환갑 청춘'을 자랑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정년이 수십년간 정든 직장을 잠시 떠나게 했지만 '열사의 땅'은 다시 그들에게 손짓했다.
젊은 직원 수십명과 바꿀 수 없는 그들의 경험과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GS칼텍스의 오만 소하르 현장의 손칠남 공장장(65).1968년 호남정유에 입사,1999년 퇴직하기까지 31년간 현장에서 근무한 그는 여수 석유화학단지의 산증인이다.
첫 해외 정유공장 운영 및 관리 계약을 따낸 GS칼텍스가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 평가받는 그를 지난해 다시 영입한 것.손 공장장은 현재 직원 26명과 함께 오는 5월 가동에 들어가는 소하르 정유공장 운영 및 관리 노하우를 오만인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손 공장장은 현장의 오만인들을 보고 있으면 37년 전 여수의 첫 공장 가동을 앞두고 필리핀 바탕가스 지역의 칼텍스 공장에서 30여명의 동료들과 서럽게 교육받던 시절이 떠오른다고 했다.
"거의 40년 만에 오만 사람들을 가르치게 될 줄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젠 수십년 축적한 한국의 기술을 전수할 수 있어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GS칼텍스는 2010년까지 운영 및 관리를 맡게 돼 있어 그가 언제쯤 귀국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현대건설 두바이 제벨알리 컨테이너 뉴터미널 현장의 배동근 전무(65)는 회사를 떠난 지 3년여 만인 지난해 9월 '제2의 고향'인 중동으로 돌아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국내외 현장이 급증하며 고급 기술인력이 모자라자 "옛 사우들을 다시 부르자"는 이지송 사장의 뜻에 따라 변홍근 전무(63·거금도 교량공사 현장),김인섭 전무(63·마창대교 현장) 등과 함께 복귀했다.
1970년 입사한 배 전무는 파푸아뉴기니 쿠웨이트 바레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해외 현장에서 20여년간 근무한 베테랑.1970년대 초 파푸아뉴기니 지하수력 발전소 건설 현장에선 지하 200m 깊이에서 땀을 흘렸고,1990년 8월 걸프전 발발 이후에도 40여일을 더 머물면서 쿠웨이트 알 주르 지역의 물 저장시설 공사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에 겪은 어려움을 말로 다할 수 없지만 지금이 가장 힘든 것 같다"면서 "똑똑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요즘엔 해외로 나오려 하지 않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란 사우스파 가스플랜트 건설현장에서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던 김영수 부장(63) 등 대림산업의 60대 베테랑들이 '프로젝트 전임직'이라는 직책을 갖고 가족과 떨어져 일하고 있다.
지난해 초부터 배관공사를 총괄하고 있는 김 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중동 플랜트 공사가 불경기를 타면서 기술자들을 양산하지 못했다"면서 "그러다 보니 다시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고마운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외 현장으로 돌아오는 '역전의 용사'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고급 인력 부족 현상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해외건설협회 박형원 기획팀장은 "특히 플랜트 분야의 전문인력 부족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업체들이 외환위기 때 퇴직한 베테랑들을 속속 복귀시키고 있지만 그래도 인력난에 숨통이 트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UAE)·소하르(오만)=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