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술 추격전은 입체적이다. 중국 최대 가전업체 하이얼은 하루 평균 1.8개의 신제품을 개발할 정도다.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는 휴대폰과 통신시스템 연구에만 3000명을 투입하고 있다. 해외 기술 도입도 적극적이다. 정부는 연구개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국가 총력전이다. ◆독자 기술로 세계 표준까지 하이얼이 작년 12월 설립 21주년을 맞았을 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매일 1.8개의 신제품을 개발하고 매일 2.8건의 지식재산권을 출원하는 기술 혁신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하이얼은 그러나 기술개발에 머물지 않는다. 세계표준 선점에도 나섰다. 하이얼은 이미 세탁기 관련 2건의 기술을 국제전기공업위원회의 국제표준으로 채택했다. 하이얼은 중국 업체들과 연합해 개발한 홈 네트워크 기술이 지난해 중국 국가표준으로 채택되자마자 해외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세계 표준으로 만들기 위한 포석이라고 중국 언론은 전했다. ◆기술 축적 비결은 해외기업과 인재 사냥 중국 최대 온라인 게임업체 샨다는 원래 게임 대리상이었다. 한국 게임 '미르의 전설 2'를 대리 운영하면서 대박을 터뜨린 샨다는 그 기세로 나스닥까지 상장해 막대한 자금을 조달했다. 그 자금이 미르의 전설 2를 제공한 한국업체 액토즈소프트를 인수할 밑천이 됐고,이는 한국의 기술을 따라잡을 발판을 마련해줬다. 징둥팡이 하이닉스 LCD사업을 사들인 것이나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것도 기술 개발에 뒤진 세월을 단숨에 따라잡기 위한 전략이다. 폭스바겐과 GM 등 합작파트너의 모델만 생산해온 상하이차는 올 하반기 영국 로버자동차의 기술을 활용해 처음으로 중고가급의 독자 모델을 선보인다. 강위안화 시대가 앞당겨지면서 중국 기업의 해외사냥은 급증할 전망이다. ◆시장 주고 기술 얻는다 시장을 주고 기술을 얻는다는 뜻인 시장환기술(市場換技術)은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고수해온 대표적인 기술 고도화 전략이다. 한국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공장 신설을 앞둔 현대차에 엔진 등에 대한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시장환기술 정책"이라고 말했다. 원자바오 총리가 작년 12월 프랑스를 방문,총 83억유로(약 10조957억원) 규모의 에어버스 여객기 150대를 구매하는 계약을 체결했을 때 중국에 에어버스가 A320기종 제조공장을 설립하는 것을 검토하도록 하는 성과를 올린 것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앞서 지멘스로부터 10억유로 규모의 고속철도 차량 60량 구매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기술이전 계약을 함께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 지도자까지 뛴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전국과학기술대회에서 "국가의 자주적 기술창조(自主創新)능력을 배양,15년 안에 기술자립형 산업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GDP(국내총생산) 대비 R&D 투자 비중을 1.3%에서 2.5%로 끌어올리고 기술 대외의존도를 50%에서 30%로 낮추기로 했다. 현장에선 기술자립을 향한 정부지원이 이미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지원할 기금을 만들기로 한 것이나 LCD패널 업체에 세제혜택을 주고 독자 브랜드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기업들을 선정,육성키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화교자본과 기술이 후원군 상하이광전(SVA)의 7세대 LCD패널 투자 계획 소식을 접한 LG전자 관계자는 "삼성 LG와는 달리 중국기업은 투자여력이 되지 않아 자금조달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화교자본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7세대 이후의 투자행보에 대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경계했다. 베이징에서 만난 삼성전자 고위관계자는 "중국이 반도체와 LCD패널에서 따라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만의 존재가 부담된다"고 말했다. 대만의 자본 및 기술이 중국의 시장과 결합할 경우 나올 파워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다. 산업연구원(KIET) 이문형 팀장은 "한국이 중국과 모든 전선에서 싸운다는 것은 그들의 낮은 인건비를 감안할 때 어불성설"이라며 "첨단부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주력해야만 추격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주용석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