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 남은 2년-이것만은 풀고 가자] (3) 투자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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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대한상공회의소가 해외 공장을 갖고 있는 291개 제조업체에 '혹시 국내로 U턴할(되돌아올)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답은 '그럴 생각이 없다'였다.
95%의 기업이 그렇게 답했다.
중국에 공장을 둔 기업(206개사)의 68%는 중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그래도 한국보다는 낫다고 평가했다.
해외 진출 기업들이 속속 자국으로 U턴하는 일본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본은 캐논 마쓰시타 등 해외 공장을 가진 16개 제조업체가 지난해 해외 생산거점을 되가져 왔거나 해외로 나갈 투자를 국내로 돌렸다.
정부는 그동안 입만 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쳤다.
하지만 기업들은 하나 둘씩 한국을 떠나고 있다.
그 결과가 최근 4~5년간 국내 설비투자의 극심한 정체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설비투자는 2000년 벤처붐 직후부터 지금까지 제자리걸음이다.
올해도 설비투자는 늘어날 조짐이 없다.
산업은행이 작년 말 국내 83개 업종,약 3600개 업체를 대상으로 '2006년 설비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제조업 설비투자 예상액은 45조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44조9000억원)보다 불과 0.1% 늘어나는 것이다.
사실상 제로(0)란 얘기다.
기업들이 투자를 하지 않다 보니 당장 일자리가 크게 늘지 않고,고용증가→소비증대→생산확대→투자증가의 경기 선순환은 기대할 수도 없는 처지다.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업종의 수출호조와 가계 부채조정에 따른 소비증가로 경기가 회복된다고는 하지만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아 불안한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의 투자부진이 미래 성장력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론 산업공동화를 초래한다는 점.한 전직 경제장관은 "세계의 제조공장인 중국과 10년 잠에서 깨어난 일본이 두자릿수의 설비투자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한국만 낮잠을 자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간 10년 뒤 한국은 중국 관광객들 발 마사지 해주는 걸로 먹고살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개탄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국내 투자를 꺼리는 것일까.
끊이지 않는 노사분규,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인상 요구 등부터가 기업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더 큰 이유가 있다.
"투자할 곳도 마땅치 않고,투자하기에도 걸림돌이 많다"(양금승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장)는 것.양 팀장은 "10년 후 한국이 먹고살 신성장동력에 대한 국가 비전이 없다 보니 기업들이 투자대상을 잡지 못하고 있다"며 "게다가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투명경영에 대한 과도한 사회적 압박도 기업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최근 돈을 많이 번 기업들도 투자를 늘리는 대신 자사주 소각을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만 돈을 쓰는 것도 그런 연유라는 것.
소위 반기업 정서도 무시할 수 없는 장애란 지적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사회 분위기가 기업들의 왕성한 활동을 저해하는 쪽으로 흐르는 게 문제"라며 "부(富)를 축적하는 것을 죄악시 하고,부자에게 징벌적인 세금을 매기는 상황에서 기업들이 열심히 뛰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기업인은 "이유야 어쨌든 세계 굴지의 기업인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죄인처럼 해외에 머물고 있는 기업 현실에서 투자확대를 얘기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업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기업 우호적인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한국 기업들은 국내에선 비판받고 있지만 오히려 해외에선 높은 평가를 받는다"며 "우리 스스로 자학적인 기업관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나면 대기업 수도권 공장신설 규제나 출자총액제한 규제 등도 풀 수 없는 문제는 아니라고 조 교수는 강조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도 "기업들이 막연히 갖고 있는 참여정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라며 "대통령이 잔뜩 주눅 든 것 같은 기업들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만으로도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차병석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