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1개월 만에 낙마하게 된 허준영 경찰청장은 경찰 조직내에서 `소수파'인 고시(외무고시 14회) 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찰개혁의 적임자로 집중조명을 받으며 치안총수에 올랐다. 허 청장은 기대에 부응하듯 `인권경찰'과 `검ㆍ경 수사권 조정'을 조직 운영의 두 축으로 삼아 뚝심있게 추진했다. 취임 직후부터 전 경찰서에 인권보호담당관을 임명하고 시민단체 관계자로 구성된 외부 자문조직인 `인권수호위원회'를 발족했다 군사정권 시절 공안사범 수사로 `악명'을 떨쳤던 남영동 대공분실을 폐지해 인권보호센터로 변모시켰고 10월4일을 `인권의 날'로 천명했다. 또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 경찰의 과오를 씻고 지난날 정권의 충복 노릇을 했던 경찰 이미지를 쇄신하는 계기로 삼았다. 치안총수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전격 방문하는가 하면 4ㆍ19 묘지 참배, 광주 5ㆍ18 묘역 방문 등 파격적인 행보를 계속해 역대 경찰청장과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테러 위협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지난달 열린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별 불상사 없이 치를 수 있도록 `완벽'에 가까운 경비ㆍ경호를 했던 것도 공적으로 꼽을 만하다. 경찰청장 인사청문회 때부터 과감하게 언급한 검ㆍ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도 허 청장의 역할은 가히 `절대적'이었다. 법률상 경찰의 상위조직인 검찰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직격탄을 날리는가 하면 때론 완급조절을 하면서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검찰을 긴장시킨 불도저 스타일의 과감성과 추진력은 조직 내에서 큰 지지와 신뢰를 받았다. 반면 `톡톡' 튀는 발언으로 설화(舌禍)의 장본인이 되기도 했다. 경찰 채용의 신체제한 규정이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에 대해 "머리나쁜 건 아무리 해도 안된다. 머리 나쁜 사람을 거르는 필기시험도 인권침해냐"란 발언으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검찰과 사사건건 부딪히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을 도외시한 채 권력기관 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변질시킨다'는 지적과 함께 지나치게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았다. 독도에 이은 마라도 방문과 4.19 및 5.18 묘지 참배 등의 행보에 대해선 `이벤트' 성격이 짙다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인권경찰호 선장'을 자처했던 허 청장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농민 2명이 사망하는 지극히 `비인권적'인 암초에 부딪혀 좌초하는 결말을 맞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강훈상 기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