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빅뱅] (9) 투자자 교육의 중요성..조기교육이 발전의 디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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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 완구업체에 다니는 한진섭씨(36)는 결혼 3년 만인 올해 득남을 했다. 늦게 얻은 자식이라 기쁜 마음이 앞서지만 이내 걱정에 묻힌다. 40대 중반에 학부형이 되고 정년을 바라볼 때쯤이면 사교육비를 걱정해야 될 처지에 이르게 되겠구나 하는 착잡함이 찾아든다.
퇴직연금 제도가 시행돼 직접 투자설계도 할 수 있다는데 정작 아는 것은 없다. 주식시장은 사상 최고치를 달리고 있건만 마음이 앞선다. 간접투자 붐을 타고 아내가 가입한 펀드는 원금마저 위협받고 있다. 홈쇼핑에서는 귀에 솔깃한 변액보험 상품이 쏟아지는데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먼저 든다.
◆글로벌 증시의 까막눈 투자자들
국내 증권산업이 빅뱅의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 일반투자자들은 한진섭씨의 사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식의 '주'자도 배우지 못한 채 공교육을 마치고 사회로 나와 직접투자로 큰 손실을 감수하면서 투자방법을 깨우쳐나간다. 1100조원의 가계 금융자산은 여전히 갈 곳을 몰라 비틀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이 증시산업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투자자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현재 가계의 주식투자 비중은 5%대로 3~4년 전의 8%대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졌다. '주가 사상 최고치 돌파'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반면 예금 비중은 여전히 55%대에 육박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주식투자 비중(2004년 기준)이 31%,예금비중은 13%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시 기피현상은 '증권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투자상품에 대한 무지와 불신이 쌓이면서 '주식투자는 도박·사행'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팽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 과정에서 주식에 대한 본격적인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대학교 경제학과 2학년 때부터다. 초등학교 때 투자방식과 위기관리를 배우는 미국과는 현저하게 차이를 드러낸다.
경희대 김근수 교수는 "최근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우리나라 성인들의 금융지식은 오히려 미국의 평균 수준을 웃돈다"며 "하지만 채권이나 주식 등 위기관리가 필요한 투자 부문은 미국 고교생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지적했다.
경제교육단체인 JA코리아 관계자는 "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주식·펀드 투자에 대한 개념과 위기관리 방법을 공교육을 통해 배워나가고 거부감 없이 체득하게 된다"며 "미국 증권산업 경쟁력의 원천은 조기 경제교육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투자자 교육,재교육부터 시작을
전문가들은 투자자 교육을 논하기에 앞서 교육자들의 재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선 교사들도 경제교육에 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내 사회·경제 담당 교사의 65.0%가 현행 경제교육의 질이 낮다고 응답했으며 37.3%는 실물경제 교육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성을 절감하지만 노하우가 부족한 상황에서 주식 교육은 자칫 사행성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일선 교사들의 우려다.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자자와 직접 대면하는 증권·금융사 전문인력들은 과거의 투자환경을 답습하고 있다. 강창희 미래에셋경제교육연구소 소장은 "증권사 FP들은 재테크 교육만 받고 고객을 응대하다보니 자산 관리 부문에 취약하고,은행이나 보험은 반대로 자산관리 교육에 집중해 투자 교육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모든 금융권,심지어는 홈쇼핑까지 같은 상품을 가지고 경쟁하는 시대에 돌입했지만 전문인력에 대한 교육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다. 강 소장은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증권사들의 생존경쟁은 가계금융 부문에서 승부가 날 것"이라며 "직원 재교육을 통한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투자자 교육 정부가 나서야
투자자 교육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관련기관과 재계의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6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증권업협회 증권선물거래소 등 9개 기관이 모여 '전국투자자교육협의회'를 만들고 교사 학부모 및 각종 단체를 대상으로 교육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금감원은 초·중·고교의 교과서 제작과정에 심의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공교육과의 연계도 차츰 강화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외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에서는 청소년 경제교육에 집중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산재한 투자자 교육 프로그램이 정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근수 교수는 "국내에서도 노후 대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중·장년으로 갈수록 오히려 투자에 대한 가치관이 심하게 왜곡되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초·중·고교는 물론 사회 초년생들에게 올바른 투자문화를 가르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