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는 연극계에 고마워해야한다"는 말이 있다. 현재 영화계의 기둥이 되고 있는 주ㆍ조연 배우 중 상당수가 연극무대에서 기본기를 다진데다 이제는 연극을 원작으로 영화화되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작품들은 흥행도 잘됐다. 올해만도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세 편 있다. 이중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는 이미 여름에 선보여 흥행했고, 마지막으로 29일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제작 이글픽쳐스ㆍ씨네월드)가 개봉한다. ▲'왕의 남자'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왕의 남자'는 연극 '이(爾)'(김태웅 작)를 원작으로 한다. '이'는 조선시대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던 말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 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이다. 2000년 한국연극협회 올해의 연극상, 희곡상, 연기상을 수상했으며 2001년 동아 연극상 작품상, 연기상 등 유수의 상을 받은 '이'는 6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재공연에 돌입했다. 충무로의 대표적 이야기꾼인 이준익 감독은 '이'를 모티브로 '왕의 남자'를 기획하면서 등장인물의 비중을 바꿨다. 연극에서는 권력에 집착하는 광대 공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지만 영화에서는 공길 대신 장생의 비중을 높였다. 절대 권력자 연산군 앞에서도 당당했던 장생의 모습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 감우성이 장생을, 신인 이준기가 공길을 연기했다. 영화는 연산을 둘러싼 이들 광대들과 장녹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연산은 정진영, 장녹수는 강성연이 연기했다. ▲검증된 드라마 연극을 영화로 옮길 경우 가장 유리한 것은 검증된 드라마라는 점이다. 영화에 맞게 각색을 하더라도 이미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을 했던 이야기인만큼 극장에서도 관객의 반응을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다. 상업영화로서 안전장치를 갖고 있는 셈. '날 보러 와요'를 원작으로 한 '살인의 추억'이 스릴러 영화로는 드물게 전국관객 500만명을 넘어 빅히트 하면서 연극과 영화의 인연을 새삼 공고히 했다면, 올해 '웰컴 투 동막골'과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그러한 랑데부에 쐐기를 박았다고 할 수 있다. 각각 전국 800만과 250만명을 모았으니 대박 중의 대박이다. 이 감독은 "연극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연극을 통해 검증된 이야기와 설정을 영화적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화려하고 풍부한 영상미 뭐니뭐니해도 영화는 영상 예술. 연극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영상미를 한껏 펼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경우는 전쟁을 묘사해야하는 까닭에 영화로 옮길 경우 제작비가 많이 든다는 점에서 기획 당시 투자사들이 난색을 표했다. 그러나 연극에서는 한정된 공간에서 배우들의 연기에 의존하는 것으로 만족했지만 영화로 옮기면서까지 그럴 수는 없는 것. 제작비 문제로 초반 난항을 겪었던 '웰컴 투 동막골'은 투자자쇼박스와 제작자 장진(그는 연극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감독의 모험심과 신뢰가 결합, 결국 800만 흥행을 달성함으로써 연극에서 영화로 향하는 길을 보다 넓혔다. '왕의 남자' 역시 마찬가지. 영화를 통해 조선시대 궁중 광대들의 화려한 마당놀이를 연극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생생하고 활기차게 표현할 수 있었다. 이 감독은 "연극은 무대극이라 기본적으로 표현의 한정성이 있다. 그것이 영화로 옮겨지면 확장된 공간에서 훨씬 다양한 표현을 끌어낼 수 있다. 특히 '왕의 남자'는 마당극이라는 넓은 공간이 충분히 표현됐다"고 설명했다. 연극 '이'는 캐릭터 묘사에 만족해야 했지만 영화 '왕의 남자'는 오픈세트 촬영을 통해 조선시대 궁과 마당극을 재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검증된 드라마에 화려한 옷마저 입혔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pret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