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골드만삭스'나 '한국판 메릴린치'로 도약하기 위한 증권사들의 물밑 경쟁이 뜨겁다.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중심의 복덕방식 영업에서 벗어나 본격 투자은행(IB)으로 발돋움하려는 증권사들의 오랜 열망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증권 자산운용 등을 한꺼번에 취급할 수 있는 종합 금융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고 상품에 대한 각종 규제를 과감히 풀기로 하면서 마침내 IB도약의 전기가 마련됐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 사이에 한발 앞서 준비 태세를 갖추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의지를 비롯한 전반적인 여건도 좋다. 증시 활황으로 대형사들은 올해에만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순익을 낼 것으로 기대돼 무엇보다 재무상황이 호전됐다. 여기에다 적립식 펀드 붐이 일면서 투자자들의 간접투자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고 투자 저변이 크게 넓어졌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최운열 서강대 교수(대외부총장)는 "제도 정비가 다소 늦긴 했지만 증권산업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며 "향후 증권사들이 기업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금융상품을 제때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투자은행 도약의 승패를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IB'와 '자산관리' 능력이 키워드 현재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들은 기업공개(IPO) 등 IB 업무와 고객자산관리 업무를 양대 축으로 육성,종합 금융투자회사로 도약한다는 전략을 마련 중이다. 삼성증권은 선물과 자산운용 등의 사업을 지금처럼 자회사 체제로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아니면 흡수하는 방안이 효율적인 것인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삼성증권 박기형 전략기획파트장은 "앞으로 자산운용 업무는 증권과 자산운용 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느냐가 생사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IB사업은 IPO와 같은 유망 분야에 주력하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할 방침이다. 특히 기존 상하이사무소를 교두보로 중국기업의 국내 상장과 중국 내 부실자산 유동화 등으로 해외사업 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우리투자증권은 IB와 종합자산관리를 중심 축으로 미국 메릴린치형 투자은행으로 도약한다는 기본구상을 갖고 있다. 또 우리은행과 연계 영업을 통해 기업과 개인고객 모두에게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자산관리 부문은 오는 2007년까지 업계 1위로 도약한다는 목표 아래 전문인력을 700명 수준으로 늘리고,IB부문은 최근 하이닉스 주식 해외매각의 공동 주간사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험을 토대로 해외 IB와 연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투자증권은 IB부문 이익비중을 향후 3년 내에 22%까지 확대해 전체 수익에서 IB와 자산관리업무가 차지하는 비중을 55% 이상으로 높인다는 구상이다. 유상호 본사영업총괄 부사장은 "급부상 중인 베트남 및 중국을 대상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IB업무를 강화하고 향후 폭발적으로 성장할 파생상품시장 선점을 위한 상품 개발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장선점 위해 규모 싸움에서 이겨야 증권사들 사이에 자기자본을 늘려 규모의 경쟁에서부터 우위를 차지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현대증권은 자산관리와 IB 등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토록 하되 대형화를 위한 자기자본 확충 및 자산운용사 인수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김지완 사장도 최근 "경쟁력 있는 투자은행이 되기 위해 자본금 확충 등의 요건이 선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는 또 관계사인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의 사명을 현대와이즈자산운용으로 바꾸며 전략적 제휴를 강화한 상태다. 대우증권 역시 자본 확대와 다양한 수익원 창출에 주력키로 했다. 현재 브로커리지 부문 시장점유율 1위의 지위는 앞으로 IB업무 영역을 개척하는 데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프로젝트파이낸싱 업무 노하우를 살린다면 특화된 IB업무를 영위하는 데 크게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도 갖고 있다. 대우증권 IB본부 채병권 부장은 "직접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는 자본력이 있어야 수익성 높은 사업을 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일본의 대형 자산운용사인 스팍스에셋매니지먼트가 참여하는 402억원 규모의 증자를 실시키로 했다. 미래에셋증권도 내년 2월 중 기업공개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자산관리 업무에 강한 장점을 투자은행 도약의 지렛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증권과 종금·투신이 합쳐진 동양종금증권은 각각의 업무 노하우를 그대로 살리면서 자사주 매각 등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을 추진키로 했다. 김수언 기자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