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옛 안기부) 도청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은 14일 임동원 신건 전 국정원장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들 두 명의 전직 국정원장이 불법 감청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석 달 넘게 진행된 국정원 도청 수사는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게 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국정원의 총괄 책임자였던 이들이 '도청을 근절하라'는 대통령 지시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특히 국정원이 국내 주요 인사 등에 대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불법 감청한 중대한 범죄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감청 업무를 맡았던 제8국(과학보안국) 산하 감청팀을 3교대로 24시간 운영하면서 상시적으로 국내 주요 인사 등의 휴대전화를 불법 감청토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또 도청을 근절하라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를 어기고 오히려 불법 감청 장비를 개발한 뒤 도청으로 입수한 정보를 지속적으로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15일 밤 늦게 결정될 전망이다. 검찰은 "임씨의 경우 대외적으로는 대북 문제에만 전념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수사 결과 유선 중계통신망 감청 장비인 R-2가 개발된 이후 구체적으로 도청을 지시한 혐의가 드러나는 등 국내 정치에도 상당히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임씨의 후임인 신씨도 임씨가 원장 때 개발한 감청 장비를 계속 사용하면서 주요 인사에 대한 불법 감청 활동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도록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은 또 신씨의 경우 수사가 본격화되자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지시하는 등 증거인멸 시도를 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국정원 도청 사건으로 기소된 김은성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신씨가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불법감청 사실을 시인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말해 검찰의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보다 도청이 더 활발했던 것으로 알려진 김영삼 정부 시절 안기부장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문제로 사법 처리할 수 없어 임씨 및 신씨와의 형평성 논란이 일 전망이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