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회담이었다. 제5차 6자회담 사흘째인 11일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6개국은 회담장인 댜오위타이에서 의장 성명을 채택하고 5차 2단계 회담의 개최 일정을 빠른 시기에 논의키로 결정했다. 이날 오전 6개국은 두 시간가량 수석대표 회의를 가진 데 이어 곧바로 전체 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한 뒤 회담을 마무리지었다. 당초 11일을 폐막 날짜로 정해 두고 시작된 이번 회담의 목적은 지난 4차 회담 때 채택한 공동 성명의 이행 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 윤곽을 도출해 내는 데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움직임에 반발,북핵 논의라는 회담의 틀을 깨면서 회담은 급속도로 경색됐다. 북측 수석 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이 지난 10일 전체 회의에서 미국의 마카오 은행에 대한 북한 불법자금 돈세탁 주장과 미국 내 북한 기업 자산동결 조치에 대한 철회와 해명이 없을 경우 북핵 논의를 유보할 수 있다는 강경 카드를 빼든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측 수석 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이 제기한 문제는 회담 밖의 이슈"라고 일축했다. 때문에 정작 북핵이라는 주제는 다뤄지지 못했다. 문제는 회담 자체의 표류 가능성이다. 차기 회담의 일정을 확정하지 못한 것 자체가 단적인 예다.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회담의 모멘텀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러한 시각을 일축했다. 회담 날짜를 잡지 못한 것은 다음주부터 열리는 부산 APEC 정상회의와 다음 달 초 동아시아 정상회의 등 각국의 외교 일정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음 달 중순 회담을 속개하더라도 손에 잡히는 결과를 내놓을 정도로 토의를 진행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차기 회담 시점은 내년 1월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