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6:56
수정2006.04.03 06:57
증권사의 투자은행 변신이 성공할 수 있을까.
내년 하반기 시행될 자본시장통합법은 증권 선물 자산운용 신탁 등 자본시장 관련 업종의 장벽을 허물어 초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겸업이 허용됐다고 해서 국내 증권사들이 당장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은 투자은행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투자은행(IB) 초보 수준
국내 증권산업은 위탁매매 수수료에 목숨이 달려 있다.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50%를 넘는다.
그러다 보니 시황에 따라 수익 규모가 달라지는 전형적인 '천수답 경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수수료 인하 경쟁이 가열되면서 국내 증권사들은 증시가 호황인 데도 수익률 저하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떠오른 사업 영역이 IB 업무다.
IB 업무는 자본 시장에서 가계의 투자자금을 기업의 산업자금으로 연결해 주는 핵심적인 기능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증권의 설계 △증권의 인수 및 발행 △M&A(인수·합병) 및 구조조정 중개와 자문 등의 업무를 말한다.
증권사들은 대부분 2002년 증시가 하락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익성이 악화되자 IB 업무 강화를 들고 나왔다.
그러나 아직 결과는 미미하다.
지난해의 경우 국내 증권사의 수익에서 위탁수수료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55%나 되는 반면 IB 부문 비중은 4%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소업체의 IPO(기업공개) 등이 주요 수입이고 대형 M&A 관련 업무는 외국계 증권사가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이 올해 상반기 국내 M&A 주간사 실적을 집계한 결과 외국계 투자은행들이 상위권을 독식했다.
UBS증권이 65억8528만달러 규모의 거래를 중개해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모건스탠리 리먼브러더스 메릴린치 등이 2∼4위를 차지했다.
국내 최대 증권사인 삼성증권이 UBS의 6.5% 수준인 4억2847만달러로 9위에 올랐을 뿐이다.
한 대형 증권사 IB본부장은 "정부가 매각하는 M&A 거래조차도 외국계가 독식하고 있다"며 "아직 국내 업체들은 외국계 증권사에 비하면 자본과 인력에서 경쟁 상대가 안 된다"고 말했다.
IB 업무 관계자들은 또 "원매자가 대형 딜(Deal)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증권사를 찾기 때문에 IB 시장에서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하다"며 국내 증권사의 애로 사항을 토로한다.
◆대형화를 위한 인센티브 필요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은행 부문에서 외국계와 경쟁하려면 무엇보다도 대형화가 급선무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증권 시장의 구조조정을 유도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증권업협회 관계자는 "현재의 증권사 규모보다 2배 이상 큰 대형 증권사가 출현한다면 투자은행 부문의 경쟁 구도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며 "업계가 과감하게 합종연횡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 자본이나 PEF(사모투자펀드) 등에 대한 규제도 과감히 풀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박윤수 대우증권 전무는 "현 시점에서 초대형 금융투자회사의 주체는 산업 자본이나 PEF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현실적인 부분을 어떻게 수용할지에 대한 교통 정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완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