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鎭炫 <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 왜 우리 국민은 이 나라 건국과 근대화를 기적같이 성취한 이승만과 박정희보다,현실에서는 성취에 실패한 김구와 장준하를 더 존경하는가. 또 왜 그들은 모두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비명에 갔는가. 네 분 모두 현실의 세계에서는 성공과 실패가 있었을망정 도덕적으로는(적어도 부패 치부 가족관리라는 점에서는) 당대의 평균적인 지도자나 국민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정결성을 가졌다는 점은 대한민국 역사가 갖는 큰 행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구와 장준하는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는 지도자의 가장 큰 덕목을 보인 어른으로 남고,이승만과 박정희는 판단착오 또는 인사실책에 의한 종말이었기에 국민들에게 '희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국가적 성취에다 그 인생의 마지막이 대의를 위한 헌신으로 장식됐더라면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오늘의 엘리트 허무주의,지도력의 아나키즘은 일찍 극복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우리는 엘리트에 대한 혐오 또는 허무감이 팽배해 있다. 기존 엘리트는 그 부패와 오만에 더하여 김대중ㆍ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반(反)엘리트 민중주의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풀려지고 있다. 또한 이의 대척점에 있는 진보진영 엘리트도 자멸하고 있다.최근 여당 내분,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노조 간부의 부패관련 구속 사태, 동국대 강정구 교수 부류들이 보이는 진보진영 논객들의 반논리적ㆍ반지성적 행태와 386세대가 보이는 독선적 행보,그리고 정권 최고지도자들의 막말홍수는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신진 진보 엘리트에 대한 불신,혐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기존 엘리트의 권위ㆍ정체성 상실은 최고 엘리트의 상징인 살아있는 전직 대통령의 초라한 모습에다 최근 우리나라 최고 기업인 삼성과 두산그룹의 내외부 사건까지 겹쳐 헤어나기 어렵게 됐다. 원천적으로 인터넷 시대,감성의 시대,네트워크 시대라 엘리트가 필요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경성(硬性) 사회에서와 같은 엘리트 '독점'은 정보화시대에 맞지 않으나 경성사회이건 연성사회이건,봉건시대건 민주시대건,정치조직이건 상업조직이건 '중심'의 엘리트는 있어야 한다. 지금 WTO 비준,노사관계,지역감정,남북관계와 이념,헌법개정 문제 등 국정의 핵심문제일수록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고 사회 전체가 공동화 해체화 현상을 보이는 이유는 참다운 엘리트,권위 있는 엘리트,신뢰할 수 있는 엘리트,적(敵)도 존경하는 엘리트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대혼란ㆍ대폭로ㆍ대갈등의 과정을 거쳐 더욱 선명히 나타나는 참 엘리트군(群)이 등장하고 있다. 황우석ㆍ정문술ㆍ안철수ㆍ윤석금씨 등.이들의 공통점은 첫째 각기 자기 분야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둘째 성공과정에서 한국에서 가장 타기할 연줄이나 패거리에 의존하지 않았고 독창성이 빛났으며,셋째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내부관리와 인화에도 성공했고,넷째 자기희생,즉 위기에 처할 때마다 자신을 제일 먼저 던졌고 또 성공한 뒤에는 미련 없이 그 성취를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 자기 이외의 밖으로 생명력 있게 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 사람의 유전자가 개체로는 얼마나 유능한지 더 이상 증명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대륙과 해양세력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도 모자란다면 세계에 떨치는 백남준ㆍ조수미ㆍ정명훈ㆍ김종훈ㆍ박영석씨의 무대와 기록,그리고 한국사람의 착한 마음을 전 세계에 대변하는 한비야ㆍ허병섭ㆍ박청수씨 등의 이타(利他)와 자비,사랑의 손길이 있다. 세계적 세기적 대성공과 희생의 모범이 있는 엘리트,권위 신뢰 희망의 엘리트가 솟아나고 있다. 이들을 격려하고 키워 이 나라의 위기를 구하자. /전 서울시립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