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담보물의 감정가를 부풀리는 수법 등으로 1000억원대의 부정대출을 저지른 전·현직 은행 지점장,금융브로커,감정평가사 등 조직적인 금융비리사범 37명이 검찰에 적발됐다. 은행들이 저마다 '깨끗한 은행'을 경영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지점장 등 은행 직원들이 브로커와 짜고 부정대출을 해준 대가로 대출커미션을 받는 등의 비리를 저지르고 있어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에는 외환위기를 계기로 국민혈세인 공적 자금이 투입된 은행도 포함돼 있어 은행 직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20일 대구지검 특수부는 금융브로커 등과 결탁해 사례비를 받고 부정대출을 해준 K은행 정모 지점장(51)과 구모 지점장(48),W은행 이모 지점장(55) 등 현직 지점장 3명과 N은행의 공제사업조합단장 허모씨(49),W은행 문모 차장(42),감정평가사 이모씨(42) 등 18명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또 대출을 알선해주고 사례비를 받은 브로커 김모씨(35)와 W은행의 또다른 지점장 한모씨(50) 등 13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하고 달아난 대출브로커 이모씨(57) 등 6명을 수배했다. 검찰은 이들이 저지른 부정대출 건수가 총 150여건으로 부정대출 규모가 1000억원대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씨는 2001년 5월부터 2002년 8월까지 W은행 범어동 지점장으로 근무하면서 브로커를 통해 서모씨 소유 빌딩의 감정가를 부풀려 47억5000만원을 불법 대출해 주는 대가로 서씨로부터 1캐럿짜리 다이아몬드(1500만원 상당)와 1㎏ 금괴 1개(1500만원 상당) 등 3000만원을 사례비로 받은 혐의다. 이들 지점장과 N은행의 허 단장 등은 2001년부터 브로커를 통해 신용불량자들에게 부정대출을 해준 대가로 2000만원에서 최고 4억1000만원을 사례로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브로커들은 신용불량자들에게 접근해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게 해주겠다고 제의한 뒤 감정평가사와 짜고 감정가를 부풀려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고 브로커와 은행직원,실제대출자,감정평가사 등이 사전에 약정한 비율로 나눠 가진 뒤 고의로 갚지 않는 수법을 써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번에 적발된 금융브로커들이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등 전국의 은행지점과 거래한 사실을 밝혀내고 금융비리가 전국적으로 만연돼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기관의 부실한 대출심사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지점의 경우 대출심사위원회가 형식적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의 비리가 적발돼도 신용도 하락을 우려해 은행들이 제 식구 감싸기 식의 감사를 벌이는 관행도 금융비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대구지검 모 검사는 "일부 은행 직원은 부정대출 등으로 인한 퇴직까지 감수하면서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등 금융기관 임직원의 도덕적 해이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대구=신경원 기자 shi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