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애리조나주의 주도(州都) 피닉스에서 동남쪽으로 50km가량 떨어진 곳에는 세계 최대 실버타운 '선시티(Sun City)'가 있다. 8만명이 거주하는 이곳에는 노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종합병원을 비롯 18홀 골프장 17개,은행 등 금융신탁회사가 15개나 된다. 실내수영장 볼링장 헬스클럽 등을 갖춘 대규모 종합 레크리에이션센터가 5개나 되고,음악동호인회 볼링클럽 등 100여개의 클럽이 운영 중이다. 1960년대 초 건설된 이 실버타운은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델워브(Del Welb)라는 민간 건설업자가 노후생활의 새로운 형태를 실현시켜 보겠다는 이상을 품고 건설했다. 이처럼 미국의 실버산업은 1942년 고령화사회(65세 이상이 전체인구의 7%)로 진입한 이래 지금껏 민간 주도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도 80% 이상이 민간의 몫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제혜택 부여,생명공학 의료기 등의 기술개발비 지원을 통해 민간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 선시티의 경우도 마찬가지.거주자들의 연간 세금부담액은 300달러 안팎이다. 연간 1000달러를 내는 다른 지역에 비하면 3분의1에 불과하다. 교육관련 세금을 내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지만 초기부터 실버타운 정착을 위해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세제혜택을 부여한 덕이 크다. 미국정부는 실버산업 육성에 아낌없는 지원을 해왔다. 1965년엔 '노인복지법'을 제정,'국영건강보험(Medicare)'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의료보험에 가입한 65세 이상의 노인과 장애인들이 부담없이 병원 및 관련시설을 찾게 됐고,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료 및 헬스케어산업이 쑥쑥 성장했다. 아울러 1974년엔 '국립고령화연구소(NIA·생명의료과학 전담)'를,1978년엔 '국립장애재활연구소(NIDRR·재활공학 전담)'를 설립,연구개발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 당연히 민간기업들이 앞다퉈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섰다. 미국의 실버산업은 민간주도로 발전해 왔지만 정부가 민간 기업의 참여를 직·간접적으로 유도해 왔다는 점에서 정부 역할이 민간보다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정부가 '예산이 없다'는 식의 타령만 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직접 투자가 안 된다면 민간기업을 끌어들일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