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10년후를 생각한다] (1) 제조업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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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개봉동에서 모피코트 등 여성복을 만들던 기원실업.이 회사는 2002년 3월 중국 다롄으로 공장을 옮겼다.
국내에 사무인력 20명만 남기고 중국에서 800명을 채용했다.
우리 일자리 800개가 사라진 셈이다.
김용기 사장은 "공장을 제대로 돌리려면 적어도 200명이 더 필요했지만 원하는 임금 수준이 높은 데다 지원자도 40명에 그쳤다"며 "중국행은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덴마크에 본사를 둔 다국적 완구업체 레고.이 회사는 지난달 경기도 이천공장을 팔고 21년간의 한국 내 생산활동을 접었다.
직원들 모두 일자리를 잃었다.
직장폐쇄까지 갔던 극심한 노사분규와 인건비 상승이 '탈(脫)한국'의 배경이었다.
한국을 떠나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토종기업뿐 아니라 외국 기업도 앞다퉈 철수하고 있다.
해외로 탈출하지 않은 사업주들은 제조업을 포기하고 임대업주로 나서고 있다.
산업 공동화와 함께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는 날로 급증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 금액은 1980년 1억4520만달러(352건)에서 지난해 59억3286만달러(3770건)로 40배 이상 늘었다.
기업들이 한국을 등지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파업을 연례행사로 여기는 강성 노조와 채산성을 맞추기 힘든 고임금,정부의 거미줄 규제가 대표적이다.
산업연구원 통계를 보면 지난해 노사분규로 제조업체가 떠안은 생산차질액만 1조6578억원.95년 88건이던 분규 건수는 지난해 462건으로 급증했다.
국내 제조업의 시간당 임금 상승률(올 1~2월)은 전년 대비 32.3%로 싱가포르(10.1%) 대만(11.6%)은 물론 중국(14.9%)보다도 높다.
정부의 규제도 문제다.
"수도권 중소기업에 대한 특별세액 감면제도 폐지나 수도권 공장 신설 불허 등을 추진해 투자를 막고 해외탈출을 유발시키는 측면이 있다"(경영자총협회 김정태 상무)는 게 재계의 지적.반기업 정서가 확산되는 것도 기업들을 내몰고 있는 요인이다.
제조업 공동화로 야기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실업률 증가.
경총 추산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중국 인도로 건너간 업체만 7000여개나 된다.
이들은 해외 현지에서 15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분배나 형평만 부르짖을 게 아니라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올인해야 한다"(경총 경제조사팀 이상철 전문위원)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전문가들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에서도 최근 노사갈등이 불거지고 임금과 땅값이 치솟고 있는 만큼 조금만이라도 기업 활동을 촉진시킬 수 있는 조치가 나온다면 떠날 기업을 붙잡는 것은 물론 나간 기업도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장석인 산업연구원 주력기간산업실장은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주면서 국내 기업에는 인색하기 이를 데 없다"면서 "이런 역차별을 조금만 없애도 밖에 있는 기업도 되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무는 "일본은 특정 산업 육성계획을 제시하는 지자체를 특구로 지정하고 각종 규제를 풀어줘 해외로 나간 기업이 U턴해 되돌아오는 등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면서 "기업들이 원하는 것은 기업을 할 만한 최소한의 환경만이라도 조성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