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프로용품 시장 아마가 먹여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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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야구팀에서 활동하는 직장인 손태성씨(35)는 아마추어 선수지만 장비만큼은 프로선수 못지 않다.
메이저리그 유격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쓰는 40만원대 롤링스 글러브와 '이치로' 선수의 14만원대 아식스 스파이크(야구화)를 착용하고 수비에 나선다.
타석에도 고급 고글과 장갑을 끼고 '이스턴'사의 티타늄 방망이(47만원)를 들고 들어선다.
'장비가 좋아야 실력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고 폼도 난다'는 게 손씨의 생각이다.
손씨처럼 스포츠,등산 등 아웃도어 관련 시장에서 '자기만족형 소비'가 확산되고 있다.
'아마추어'한테 꼭 필요하지 않는 고기능이 들어 있는 고가의 전문가용이 잘 팔리고 있는 것.야구 글러브의 경우 보급형(10만~15만원)보다 두 배 비싼 30만원 선의 선수용이 많이 팔리고 있다.
동대문운동장 근처 야구용품점 '롤링스 총판'의 이동식 부장은 "요즘 동호인들은 '페드로 마르티네즈 글러브'나 '이종범 스파이크' 등 유명 선수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하며 장비를 찾곤 한다"고 말했다.
등산용품도 마찬가지.69만원대인 노스페이스 '인퓨전 재킷'은 마찰이 심한 어깨,포켓,밑단 등에 특수 고분자소재를 덧댄 전문가용이지만 매장마다 하루 대여섯벌씩은 꼬박꼬박 팔려나간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의 박영아 노스페이스 매니저는 "고어텍스의 프리미엄급 원단인 'XCR'를 사용한 인퓨전 재킷은 산악 그랜드슬램의 주인공 박영석 대장이 남극 대장정에 나섰을 때 입었던 제품이지만,구입 고객은 주로 우면산이나 관악산에 오르는 일반인"이라고 말했다.
이에 힘입어 고어텍스 원단을 국내에 공급하는 고어코리아의 매출은 2001년 139억원에서 지난해 218억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고어 본사는 독일 인구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매출액이 독일과 비슷하게 나오자 한국을 '전략 시장'으로 분류,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등산용품업체 K2코리아가 처음으로 제품을 '트레킹 라인(일반인용)'과 '익스트림 라인(전문가용)'으로 구분한 2004년 상반기엔 익스트림 라인의 매출 비중이 15% 정도였지만,올 상반기에는 25%까지 높아졌다.
카메라 등 취미용품도 고가의 전문가용 제품을 찾는 일반인이 많다.
캐논의 'EOS 350D'나 니콘의 'D70' 등은 노출,거리,초점 등 모든 기능을 수동조작해야 하는 고가지만 사진동호회 모임에선 이 제품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다음'에서 사진 관련 카페를 운영하는 이모씨(31)는 "동호인 중 비싼 수동카메라를 구입하고 항상 '완전자동 모드'로만 사용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면서 "이런 경우 낭비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이동진 연세대 경영대 교수는 "현대인은 기본적인 기능적 욕구 외에 '자기표현'이라는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소비를 하는 것"이라며 "최근 광고가 제품의 효능 설명보다는 이미지 각인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도 이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차기현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