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4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에 대해 검찰측의 공소내용을 대부분 받아들여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일단 1996년 말 CB 발행 당시 에버랜드가 이재용 상무의 경영권 승계를 돕기 위해 CB를 저가로 발행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측면에서 삼성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상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에버랜드 지분을 무력화시키기에는 법적인 난관이 많아 이번 판결이 에버랜드를 정점으로 한 삼성의 기존 지배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다만 삼성이 이 상무에게 편법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물려 주려 했다는 도덕성 논란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이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그룹 핵심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어 향후 삼성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직접 영향 없어 검찰은 이날 법원의 유죄판결에 따라 CB 배정 당시 에버랜드에서 이사나 감사 등으로 재직했던 인사들을 소환해 이 상무 등에게 에버랜드 CB를 시중가보다 낮게 제공하기로 공모를 했는지 등을 밝혀 나가기로 했다. 특히 검찰은 이 회장이 에버랜드 CB가 이 상무 등에게 집중적으로 배정될 수 있도록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들에게 CB를 포기하도록 지시했는지 등도 수사할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확대되고 법원이 이번에 형사상 유죄를 인정했다 하더라도 당시 이 상무가 배정받은 CB 자체가 무효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이 상무가 주식으로 전환한 CB가 효력을 잃으려면 당시 있었던 이사회가 무효라는 것 외에도 CB를 발행한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추가로 입증해야 한다. 법무법인 율촌의 윤희웅 변호사는 "CB 발행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도 CB를 주식으로 전환한 신주가 발행된 날로부터 6개월 이내로 제한돼 있는 만큼 이미 제소시효가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이 상무에게 CB를 7700원에 배정한 것은 저가 발행에 해당해 배임죄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검찰이 제시한 8만5000원을 적정가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특경가법의 법리를 오해한 데 따른 것"이라며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로 인해 에버랜드의 CB 발행이 회사에 손실을 끼치기는 했지만 그 피해액은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1심 법원의 판단과 피해액이 최소 969억원에 이른다는 검찰측 논리의 진위 여부는 향후 상급심에서 가려지게 됐다. ◆삼성 '초비상' 법원의 판결 소식을 접한 삼성은 일대 충격에 휩싸였다. 삼성 관계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며 "항소 여부는 지금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삼성은 이번 재판과정에서 "96년 말에는 비상장 주식에 대한 법적 평가기준이 없었고 기업회계에 대한 투명성이 낮아 코스닥에 새로 등록하는 기업들도 액면가를 넘어서는 시가발생이 규제되고 있었던 만큼 검찰이 기소한 '저가발행'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삼성은 무엇보다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위반 논란에 이어 '에버랜드 CB발행 재판'까지 패소하자 삼성 지배구조에 대한 논란이 더욱 거세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삼성 공화국론'을 앞세워 전방위로 삼성을 압박하고 있는 참여연대는 "검찰은 약속한 대로 이건희 회장을 포함한 나머지 임원에 대해 추가수사를 벌여 기소해야 한다"며 "참여연대는 당시 삼성에버랜드 CB 인수를 포기하고 실권한 제일모직 등 삼성 계열사들의 경영진에 대한 소송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조일훈·정인설·유승호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