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돈키호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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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저녁마다 일이 생겼다. 가을 학기부터 시작된 '한경-숙명 블루오션 CEO과정'에 가야 한다.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블루오션 최고경영자 과정을 직접 선택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면학 열기가 뜨겁다. 준비한 사람으로선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외부강사를 초청한 지난 27일 저녁 강좌가 그랬다. '골프와 경영'이라는 흥미있는 주제에 이 분야를 개척한 주인공인 김광호 콤비마케팅연구원장을 초대했지만 수강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걱정이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당신의 고객은 지금 필드에 있다'는 정곡을 찌르는 카피가 경영자들을 꼼짝 못하게 했다. 아놀드 파머, 잭 니클로스, 타이거 우즈, 박세리 등 익숙한 이름이 끊이지 않는 골프 역시 강의 소재로서는 제격이었다.
코디네이터로서 수강생들의 반응을 살피다보니 묘하게도 이들을 '흥분'시키는 건 골프가 아니었다. 오히려 골프의 세계로 빗대 설명되는 리더십 용어들이었다. 그 가운데 특히 '열정'과 '꿈' '비전' 같은 단어들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길게는 수십년 만에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온 최고경영자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창업 혹은 입사 당시의 '꿈'이 생각나는 표정들이었다.
특히 올해로 출간된 지 꼭 400년이 되는 '돈키호테'의 한 구절을 같이 읽는 대목에서는 작으나마 감동적인 떨림이 전해져 올 정도였다. 그 대목을 옮기면 이렇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블루오션 CEO과정에 참여한 경영자들은 이날 밤 귀가길에 오랜만에 하늘을 보며 별을 찾는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꿈의 역설은 누군가에게는 너무 소중하지만 남들에겐 오히려 가소롭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큰 꿈일 수록, 원대한 계획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비즈니스 세상을 바꿔온 것은 바로 경영자들의 이런 꿈이다. 시골 사람들이 2∼3시간 걸려 도시로 나올 일 없도록 만들려는 꿈을 가졌던 이가 샘 월튼이다. 그는 인구 2만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에 월마트를 세워가며 이 꿈을 실천해 마침내 세계 최고의 유통기업을 일궈냈다. 세계 1,2위의 부자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같이 책을 내면서 꼽은 성공의 비결도 바로 '꿈'이었다.
꿈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세상을 상대로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장애를 딛고 세계 기록을 세운 수영선수 김진호군이 키워온 건 실력이지만 잃지 않은 건 바로 그 꿈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기업들이 미래를 얘기하지 않는다. 5년도 남지 않은 2010년 비전을 내놓는 기업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일까. 아니면 기업가의 꿈 같은 건 가소롭게 보는 사회적 분위기 탓일까.
노벨연구소가 지난 2002년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역사상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꼽은 이유는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저돌적인 인간형을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돈키호테같은 거창한 꿈을 가진 경영자들을 만나고 싶다. 저성장 시대를 헤쳐가는 힘은 남이 보기엔 무모하기까지 한 원대한 꿈을 가진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