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소버린의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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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 3층 소회의실에 기업과 학계 관계자 50여명이 모여들었다. 한국 주식을 모두 팔아 8000억원의 차익을 챙겨간 소버린자산운용의 투자담당 임원이 한달 만에 나타나 '한국 투자에 얽힌 뒷얘기'를 들려준다고 해서였다.
한국증권학회가 주최한 이날 세미나는 초반부터 해프닝이 연출됐다. 취재진이 세미나장에 들어서자 소버린측은 비공개를 고집하며 주최측을 통해 퇴장을 요구했다. 소버린은 심지어 자신들에 대한 비판기사를 많이 실은 특정 언론을 지목하며 퇴장하지 않으면 돌아가겠다고 주최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결국 이날 세미나는 예정보다 한시간이 지나 시작됐다.
뒤늦게 세미나장에 모습을 나타낸 소버린의 마크 스톨슨 상무는 시종일관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발언으로 일관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SK㈜에 대한 투자는 적대적 M&A(인수합병)나 투기목적이 아닌 '주주권리 보호 차원'의 정당한 것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발표가 끝나고 토론 패널들이 소버린의 SK㈜투자 과정에서 일어났던 의혹들을 조목조목 지적하자 이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당시에는 몰랐다" 등의 답변뿐이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 연구원이 미국 증권관련법을 들어 "소버린이 국내의 허술한 '5%룰'(증권거래법상 5% 지분 취득 후 5일 이내에 신고하도록 돼있는 조항)을 악용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하자 마크 스톨슨 상무는 "내가 과거 10년간 미국에서 기업담당 변호사로 활동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소버린의 한국 투자에 대해선 찬반양론이 있겠지만 소버린의 자세는 오만함으로 가득차 있다"며 "과거 SK㈜ 투자 행적을 보더라도 한국을 무시하고 있다는 흔적이 역력하다"고 꼬집었다. 또다른 참석자는 "소버린이 한국에는 자신들에 관한 거짓 정보만 가득하다고 했지만 한국인을 철저히 속인 것은 정작 자신들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마크 스톨슨 상무는 이날 저녁 증권학회가 대접한 불고기 만찬을 즐기고 거마비까지 챙긴 채 다시 한국을 떠났다.
정종태 증권부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