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5:03
수정2006.04.03 05:04
경기도 파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최종훈씨(46)는 오후 6시30분이 넘으면 가게를 정리하기 시작한다.
7시가 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남들처럼 귀가하지 못하고 대리운전 사무실로 '출근'한다.
2개월 전부터 부동산 거래가 끊기면서 30만원인 가게 월세도 내지 못할 형편에 처해 대리운전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날마다 이곳에서 새벽 1시까지 대기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해서 최씨가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40만원 남짓.그나마 최근에는 손님이 줄어들어 하루에 1만원도 못버는 날도 있다.
최씨는 "임대료를 내고 10만원 정도 남아 용돈으로 쓴다"며 "어차피 중개업소에 손님이 없어 낮잠을 많이 자서 잠이 모자랄 일은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유례 없는 불경기에 '투잡스'(Two Jobs)에 나서는 공인중개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두 달 전부터 매매거래가 급속도로 줄어든 데다 8·31 부동산 종합대책 이후로는 전세 물건도 급감,수수료 수입을 거의 올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달 공인중개사 시험에 15만명이 몰리는 등 공인중개사 사이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것도 다른 원인이다.
이들이 선호하는 세컨드 직업은 보험설계사,신문·우유배달원 등이다.
본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 것들이다.
한 달 전부터 보험설계사로 나선 신갑숙씨(36·서울 신길동)는 "아침 일찍 일어나 교육을 받고 점심 때쯤 사무실에 나온다"며 "보험영업상 불가피하게 가게를 비워야 할 일이 생겨도 어차피 손님이 없어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특히 부동산중개업을 통해 구축한 인맥을 보험영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성북구 월곡동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서모씨도 새벽 우유배달에 나섰다.
서씨는 "어차피 대부분의 중개업소가 오전10시께 문을 여는 만큼 우유 배달로 영업에 지장받을 일은 없다"며 "인근에 길음 뉴타운이 개발되면서 아파트가 많이 들어왔는데 본업인 부동산중개업보다는 부업인 우유배달에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조민제 대한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연구소장은 "정부가 실업자 구제책의 일환으로 부동산중개업자를 과잉 배출한 것이 근본 원인"이라며 "공급 과잉으로 한계 상황에 다다른 중개업자들의 생계를 원인 제공자인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