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4:53
수정2006.04.03 04:55
지난 6일(현지시간) 오전, '9·11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인 '그라운드 제로'.부러진 철근이며 상하수도관 등 9·11테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이곳에 뉴욕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모였다.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조지 파타키 뉴욕주지사(공화당)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당)을 비롯해 노먼 미테타 연방 교통부장관,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리처드 코디 뉴저지주지사 등.WTC 재건사업의 첫걸음인 '세계무역센터 터미널' 기공식을 갖기 위해서였다.
9·11테러 4주년을 맞아 다시 도약한다는 의미가 있었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미국 사상 최대의 자연재해인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이었다.
축사에 나선 10여명의 발언도 다분히 카트리나에 맞춰졌다.
"우리가 9·11테러의 아픔을 극복했듯이 카트리나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도 금방 일어설 것으로 확신한다(파타키 지사)"거나, "피해 주민들에게 뉴욕과 미국은 여러분 편이라고 말했는데 오늘 그 말을 실감한다(클린턴 의원)"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렇듯 미국 사람들이 카트리나로부터 받은 충격은 9·11테러만큼이나 엄청나다.
아울러 미국 지도층들은 9·11을 이겨냈듯이 카트리나의 재앙도 이겨낼 것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평범한 미국 사람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경제적 상처는 극복하겠지만 정신적 당혹감과 미국 사회의 분열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복구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흑인이다보니 정부가 늑장 대처,피해를 키웠다"거나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지만 않았어도 신속한 구조가 가능했을 것"이란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카트리나가 가져온 충격은 9·11테러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한목소리로 9·11테러를 비판했던 외신들조차 "카트리나로 인해 인종차별 공공 부패 환경 오염 등 미국의 상처가 또렷하게 드러났다"고 비아냥거리고 있는 걸 보면 더욱 그렇다.
미국 지도층들이 "우리는 카트리나의 재앙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던 그 시간, 하늘에서는 테러를 막기 위한 무장헬기가 내내 선회하고 있었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