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재래시장은 현대화를 생존전략의 첫 번째로 꼽는다.


가격인하 전쟁에 본격 참여해 경쟁자를 쓰러뜨리는 이른바 '레드오션 전략'을 구사하는 시장도 많다.


하지만 오랜 전통을 오히려 강점으로 부각시키며 전문 시장으로 발돋움하는 곳도 있다.


프랑스 벼룩시장인 클리낭쿠르가 대표적이다.


파리와 북쪽 생투엥지역 경계선에 위치해 파리-생투엥 벼룩시장(Les PUCES de PARIS SAINT-OUEN)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서민장터의 상징인 '벼룩'이란 이름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대의 골동품시장이다.


올해로 설립 120주년을 맞는 오랜 기간 그곳에 흘러들어온 퀘퀘한 물건들을 골동품이란 보석으로 가꾼 것이다.


당초 이 지역은 파리에서 쫓겨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파리와 생투엥지역의 통로였기 때문에 자연히 이곳을 중심으로 쓰던 물건을 사고 파는 벼룩시장이 형성됐다.


하지만 1910년 파리시가 장벽을 허물고 이 지역 사람들의 자유왕래를 허용하자 시장은 커지기 시작했고,1915년 조합을 만들어 세력화에 성공했다.


특히 1920년께 잡동사니 더미에서 피카소 세잔느의 초기 작품이 발견돼 관심지역으로 급부상하면서 규모가 7만㎡(3만평)에 달하는 오늘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지난 2001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시장으로 지정받았다.


때문에 이곳은 다른 벼룩시장과는 달리 공식적으로 노점이 허용되지 않고 있다.


동시에 매매에 따른 세금도 내야 한다.


땅은 국가소유이나 점포의 권리를 사고 팔 수도 있다.


파리 메트로 4호선 종점인 클리낭쿠르에서 내리면 곧 바로 벼룩시장으로 이어진다.


시장 입구에 늘어선 조잡한 물건들을 담은 좌판대를 지나치면 16개의 거대한 독립적인 시장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는 100년 된 실내 장식구나 벽걸이 고가구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7000종에 달하는 서로 다른 모양의 열쇠고리를 파는 점포도 있다.


가장 오래된 베르네종 구역은 긴 역사를 말해주듯 지금도 점포 안팎에 전기선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현대화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유지하는 전략으로 주가를 더욱 높여 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1유로짜리도 있지만 10만유로(1억3000만원)를 웃도는 고가품들도 있다.


500여개의 의류점과 1800개가 넘는 골동품점을 하루종일 둘러보면 세계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골동품시장이라는 그들의 주장이 결코 호언은 아님을 절감하게 된다.


토·일·월요일 주 3일간 문을 열며,토요일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린다.


이곳 홍보 책임자인 마리도미니크 타바르는 매주 12만∼15만명,연간 1100만명 이상이 다녀간다고 전했다.


이 시장의 강점은 신뢰성이다.


골동품 감정가들이 6개월에 한 번씩 각 가게를 들러 파는 물건을 점검한다.


고가 골동품의 경우 인증서를 발급해 주기도 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국제 골동품시장으로 발돋움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큰 강점은 긴 역사를 활용한 기획성이다.


테마기획이 뛰어나 매주 주력상품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이번주에 중세 이탈리아 왕궁에 이벤트 초점을 맞춘다면 내주에는 16세기 수도원 물건 등을 스페셜로 선보인다"는 게 타바르 홍보책임자의 설명이다.


이 시장은 지금 120주년을 기념해 국제 골동품박람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유럽 및 아시아 국가 골동품 상인 1800명을 초청,오는 10월6일부터 4일간 대규모 골동품 박람회를 연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첫째,둘째날은 칵테일 파티 등 그들만의 이벤트를 가진 후 3일째부터 일반인들에게 전세계 골동품을 선보인다.


이를 위해 20세기 초 물건과 상거래 모습을 담은 영화제작도 하고 있다.


이 시장은 나아가 2006년 5월 일본 도쿄에서 파리-생투엥 벼룩시장을 재현할 계획이다.


120년 전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일본 열도에 프랑스 벼룩시장 열풍을 일으킨다는 전략이다.


지난 2002년에는 신세계백화점이 클리낭쿠르 특별전을 연 적도 있다.


타바르 홍보책임자는 "클리낭쿠르 벼룩시장은 이제 국제시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파리,생투엥,그리고 정부 관광공사 등이 합심해 이 시장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클리낭쿠르가 그 긴 역사를 무기로 문화까지 수출하는 단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리·생투엥=김영규 부국장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