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으로 가자] 제2부 : (5ㆍ끝) '홍콩의 왕관'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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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가 홍콩의 왕관을 훔쳤다.'
호주 경제잡지인 '아시아 투데이'는 올 1분기 중 싱가포르 항이 컨테이너 처리 물량 기준으로 홍콩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서자 이같이 보도했다.
홍콩은 1987년 이후 분기별 세 차례를 제외하곤 세계 1위의 컨테이너 항만이란 자리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올 1분기에는 싱가포르 항이 컨테이너 552만2000TEU(20피트 길이 컨테이너)를 처리,홍콩 항(527만TEU)을 누르고 사상 처음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홍콩의 경우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유럽과 미국으로의 섬유류 제품 수출 급증 같은 긍정적 요인이 있었음에도 선두 자리를 빼앗겨 충격이 더욱 컸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경쟁력이 강화된 인근 항구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다.
홍콩은 중국 상하이와 선전 항의 경쟁력 강화로,싱가포르도 말레이시아 탄정펠레파스 항(PTP)의 급성장으로 수성(守成)에 애를 먹고 있다.
싱가포르항만공사(PSA)가 최대 고객이었던 세계적인 선박회사 머스크와 에버그린 마린사를 PTP에 빼앗긴 게 대표적 예다.
하지만 홍콩은 성장세가 정체된 반면 싱가포르는 지칠 줄 모르고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 항의 2004년 컨테이너 처리 물량 증가율은 전년 대비 13.8%로 홍콩 항의 증가율(4.5%)을 크게 앞섰다.
싱가포르 항이 이처럼 지속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환적(換積) 화물'이란 블루오션에 집중한 결과라는 게 현지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 PSA는 싱가포르를 종점으로 하는 화물보다는 싱가포르 항을 거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환적 화물을 유치하는 것을 전략적 목표로 삼았다. 자원이나 인구가 빈약한 상황에서 자체 화물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서구 국가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환적 화물의 중심지로 성장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싱가포르는 우선 환적화물 처리를 위한 최상의 시스템을 구축했다.
항만 이용자와 항구 운영당국 간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포트넷(PORTNET)이란 물류정보 시스템을 도입해 환적 시간을 세계에서 가장 짧게 만든 것이다.
이 시스템은 컨테이너가 항구에 들어오기 전 미리 관련 정보를 전달받아 최적의 연결 지점을 확보해 놓고 화물이 도착하는 즉시 목적지까지 가는 다른 배와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PSA의 리셔훈 홍보담당 부장은 "보통 다섯 시간 안에 환적이 가능하며 급한 화물의 경우 두 시간 안에도 처리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또 싱가포르 항은 하루 24시간,1년 365일 잠들지 않는 항구다.
다른 나라 항구에선 하루 네 시간씩 작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지만 싱가포르 항은 빠른 화물 처리를 위해 상시 운영체제를 도입했다.
이와 함께 X레이 시설과 400개 컨테이너를 동시에 보관할 수 있는 냉동 시설 등 수요자 욕구에 맞는 다양한 설비도 갖췄다.
특히 컨테이너항 출입구에 컨테이너 트럭의 각종 정보를 입력해 놓아 이곳을 지나는 트럭들은 불과 10여초 만에 통과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항만을 통과하려면 각종 서류 검사를 하느라 보통 30분 이상이 걸렸다.
환적 화물을 중심으로 항만을 운영한 결과 싱가포르 항은 다른 경쟁 항구가 쫓아오기 힘든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
PSA의 고미아혹 기술개발담당 수석 부사장은 "수많은 환적 화물선을 유치했기 때문에 연결성 측면에서 인근 항구를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경쟁 항구보다 환적 노하우도 훨씬 많이 갖고 있어 다른 항구들이 저가를 무기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지만 싱가포르 항은 여전히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PSA는 지난해 35억싱가포르달러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5.2%의 성장률을 보였고 순이익도 전년 대비 29%나 높은 8억8000만싱가포르달러를 기록했다.
싱가포르=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