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세계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시장을 ‘크기의 경쟁 구도’로 급속히 재편해 가고 있다.1995년 처음으로 LCD패널을 생산한 이래 5세대(1100×1300mm)까지 또박또박 패널의 크기를 키워온 삼성은 6세대(1500×1850mm)를 건너뛰고 7세대(1870×2200mm)로 직행했다.모니터용 LCD를 생산하던 체제에서 40인치 이상의 대형TV를 만들 수 있는 LCD 모듈을 생산하는 체제로 급격히 전환한 것이다.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7세대 라인(월 6만장 생산)을 가동하기 시작한 삼성은 같은 규모의 라인을 내년 4월 추가하기 위해 설비도입을 서두르고 있다.유리기판의 크기로 세대가 구분되는 LCD패널은 누가 먼저 큰 사이즈를 선점하느냐가 경쟁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이상완 삼성전자 LCD사업총괄 사장(55).그는 아산 탕정을 세계 LCD 산업을 상징하는 '크리스털밸리'로 만드는 밑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16년동안 반도체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 사장은 1995년 LCD 첫 생산을 시작한지 불과 4년만에 삼성전자를 대형 LCD부문에서 일본 업체를 제치고 1위 업체로 끌어올린 LCD업계의 ‘대부’로 불린다.사업초기 여러 계열사 출신들로 사업부를 구성한 탓에 ‘UN군’ ‘멜팅팟(인종의 도가니)으로 불리던 LCD사업부를 반도체사업부처럼 일사불란한 체제로 만들어 삼성전자의 차세대 핵심사업군으로 변신시켰다.삼성맨 답지않은 ‘불도저’란 별명을 가진 그를 7-2라인 장비 반입 준비로 바쁜 7월말 아산 탕정 사업장에서 만났다.


"국내 LCD산업이 반도체처럼 확고한 경쟁력을 가지려면 '사이즈의 차별화'가 핵심입니다.


대만 업체나 국내 경쟁사가 6세대로 들어갈 때 삼성이 한발 앞서 7세대 투자를 결정한 것도 크기가 경쟁력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은 앞으로 LCD시장은 7세대가 기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PC용 모니터와 32인치 TV용 패널이 중심인 6세대 이전과는 달리 40인치 이상 TV용 패널이 핵심인 7세대부터는 경쟁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그는 "7세대 라인은 이전과 달리 한꺼번에 30억달러 이상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고 설비도 크게 달라져서 선두업체가 치고 나가면 추격이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근 빠르게 추격하고 있는 대만이나 '신국공(新國共)합작형태'로 손을 잡고 있는 대만-중국 연합에 크게 무게를 두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사장은 "대만의 후발업체 5개 중 3개사 정도는 투자여력이 없어 사실상 '종이 호랑이'에 불과하고 중국 후발업체들도 위협 상대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LCD패널 시장주도업체는 국내 2개사,대만 2개사,일본 1개사 등 모두 5개 회사 정도로 압축될 것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지난 4월 가동에 들어간 탕정 S-LCD의 7세대 라인은 초기 30인치 중심의 시험가동을 거쳐 지난달 말부터 40인치 생산비중이 50%대로 올라섰다.


사실상 세계 처음으로 40인치 양산에 들어간 것이다.


10월 말까진 LCD유리기판(1870×2200mm)기준 월 출하량을 6만장으로 끌어올려 대형시장을 주도한다는 구상이다.


이는 경쟁 디스플레이인 PDP와의 경쟁에서도 한층 유리한 입장에 서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DP와의 경쟁관계를 묻자 "삼성SDI와 싸움붙이려고 그러냐"며 즉답을 피하던 이 사장은 LCD의 경쟁 우위를 '위협기술론'으로 에둘러 설명했다.


"어떤 디스플레이가 경쟁에서 이길지는 위협기술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와 직결됩니다.


브라운관 TV에서 PDP TV,LCD TV로 이어지는 변화도 이런 위협기술의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LCD가 기술한계를 극복했기 때문에 PDP를 위협하는 기술이 됐고,대형패널이 쏟아지는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경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는 "이 때문에 PDP는 결과적으로 LCD에 40인치대까지 자리를 내주고 50인치 이상의 전문디스플레이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주목받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개발 주체에 대해서는 "소형은 삼성SDI가 맡고 대형은 삼성전자가 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LCD TV의 대중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완제품 세트의 높은 마진을 지적했다.


그는 "LCD TV 완제품의 유통마진은 30∼35%수준으로 LCD모니터 유통마진의 2배에 달한다"며 "이처럼 높은 마진이 일반인들의 LCD TV 구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델(Dell)처럼 유통마진의 틈새를 파고드는 업체들이 시장을 잠식하기 전에 세트 업체들이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전체 TV 시장에서 LCD TV의 판매 비중이 10%선을 넘어서는 올해 이후부터는 LCD TV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PC 모니터 시장이 브라운관 중심에서 LCD 중심으로 넘어간 기준이 LCD 모니터의 시장 점유율이 10~15%선에 도달했을 때였다"며 "이런 선례를 감안하면 LCD TV판매량이 약 2000만대(10%)로 예상되는 올해가 LCD TV 보급의 변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삼성은 LCD분야에서 경쟁업체와의 제휴가 많은 편이다.


탕정 7-1라인도 소니와의 합작법인이다.


이 사장은 이는 디지털 시장표준화를 위한 합종연횡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니와의 합작은 자체 브랜드 파워를 갖춘 양사가 협력을 통해 40인치 이상 대형 TV시장 선도를 노린 것"이라며 "과거에도 12.1인치 노트북을 공략할 때는 도시바와 손잡았고 17인치 모니터는 델,32인치는 마쓰시타와 협력해 시장 선점에 성공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이 사장은 최근 해외 시장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LCD패널에 관세를 부과하지 않던 유럽연합(EU)이 정책을 재검토하는 등 유럽시장 수출 전선에 빨간 등이 켜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다.


올해 초 직접 동유럽으로 날아가 해외 공장 부지를 둘러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동유럽 공장 부지와 동반진출이 가능한 협력업체 물색 등의 준비는 이미 끝냈다"며 "관세부과 등의 변화에 대비해 삼성전자 완제품 공장이 있는 동유럽 지역에 모듈공장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일훈·김형호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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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완 사장은 ]


▷1950년 서울생


▷1968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4년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1981년 연세대학교 경영학 석사


▷1976년 삼성전자 입사


▷1992년 주문형반도체(ASIC) 마케팅총괄


▷1995년 특수사업부(LCD) 사업부총괄


▷2001년 AM(능동형)LCD사업부 사업부총괄 사장


▷2003년 한국정보디스플레이 학회 제3대 회장


▷2004년 LCD총괄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