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르네상스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그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지난 4월초 이 그림의 전시실을 바꿨다.모나리자는 이전에도 이 박물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었지만 소설 ‘다빈치 코드’가 발표된 이후 새로운 조명을 받자 보다 큰 방으로 옮긴 것이다.


맞은 편에는 예수와 사도들의 모습이 담긴 드 베로네즈의 대작 ‘가나의 결혼식’이 10여년간의 긴 보수작업을 끝내고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박물관측은 모나리자의 전시장 변경이 '다빈치 코드'와는 무관하다고 강변한다.하지만 여름 휴가기간중 파리를 찾은 관광객들은 오전 9시 루브르가 문을 열자마자 모나리자가 전시된 방으로 황급히 발길을 옮긴다.그리고 유리 장막 속의 모나리자를 꼼꼼히 살펴보며 '다빈치코드'의 내용(남성과 여성의 자웅동체)과 비교한 뒤에야 밀로의 비너스(아프로디테)나 프랑스왕관의 다이아몬드 전시실로 향한다.파리지앵들이 피서를 떠나고 그 빈자리를 메운 수백만명의 관광객들이 모나리자의 벗이 되고 있는 셈이다.



과거 '모나리자'의 명성에 가려 눈길을 끌지 못했던 '암굴의 성모'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림이다.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성모 마리아가 예수 세례요한 수호천사 우리엘과 동굴 속에 함께 있는 장면으로 다빈치의 또 다른 코드(이교도적 분위기)가 담겨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한국을 비롯 전 세계 수천만 명이 탐독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빌립보 복음서 인용),그 후손들이 프랑스에서 비밀리에 살아왔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황청의 여성 차별적 시각이 마리아와 그 후손들의 존재를 말살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마리아의 후손을 지키기 위해 비밀 집단이 만든 '코드'를 교황청과 그 후견 조직인 오푸스 데이가 파괴하려는 시도가 숨가쁘게 묘사되고 있다.


다빈치는 예수의 후예를 지키려는 시온 수도회와 같은 비밀결사대 일원이며 자신의 작품에 예수와 마리아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암호를 남겨 두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그 암호는 정통 가톨릭의 시각에서는 이교도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


다빈치의 또 다른 걸작인 프레스코 벽화 '최후의 만찬'이 있는 이탈리아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부속 건물(지금은 박물관 소속)도 관광객의 행렬이 이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지금은 최소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관람이 가능하다.


예약 없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인근 두오모 성당을 돌아보거나 패션 거리의 여름 세일을 즐기는 데 만족해야 한다.


'다빈치 코드'는 예수 왼쪽 편에 있는 인물이 12사도 중 하나인 요한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고 주장한다.


동시에 두 사람 간 공간을 만들어주는 'V'와 'M'에 코드적 의미를 부여한다.


관람객들은 이제 다빈치의 걸작을 감상하기보다는 요한의 얼굴을 열심히 관찰하며 여성적 자태를 찾아내고 코드를 음미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박물관측은 프레스코 벽화의 보존을 위해 매 15분간 25명씩만 관람을 허용하고 있다.


관람객의 70%가 외국인이어서 먼 나라에서 왔다며 입장시켜 줄 것을 하소연해도 반응은 냉담하다.


지금 유럽 관광객중 상당수는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다빈치코드'에 나오는 장소를 찾아가는 데서 새로운 즐거움을 얻고있다.패션과 앤티크가 어우러지는 유럽에 이 책이 새로운 관광명소들을 탄생시킨 것이다.파리 뤽상부르공원 옆 생 쉴피스성당이 '다빈치 코드'의 내용을 반박하는 해명서를 성당 내 오벨리스크 옆에 쌓아둔것도 이 책을 근거한 독자들의 질문이 연일 쏟아졌기 때문이다.이 책은 생 쉴피스 성당을 마리아의 후손을 지키는 시온수도회의 비밀장소로 묘사하고 오벨리스크와 황동선의 대형 해시계를 그 근거로 제시하고있다.결국 이 성당 폴 루마네 주임신부는 소설속 허위에 불구하다는 해명서를 만든 것이다.파리에서 두번째로 큰 성당이지만 외부인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곳도 이제 인근 공원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원조품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있다.


바티칸 교황청은 물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10km 떨어진 로슬린 예배당(성배의 메카),프랑스 남부 렌르샤또(후예들의 거주지), 베르사유궁전 옆 빌레트성 등도 '다빈치 코드' 덕분에 새롭게 뜨는 곳이다.소설의 주인공 처럼 파리 최고급 호텔 리츠를 출발,리슐리외 거리의 구리 원판을 찾아나서는 열성파들도 나왔다.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 픽션은 ‘음모 문학의 최정수’란 일각의 비판에도 백야의 유럽을 더욱 달구고 있는 것이다.


예술의 힘은 상당한 파괴력을 갖는다.'다빈치 코드'는 작가에게 부(富)를 안겨주었을 뿐 아니라 유럽여행의 또 다른 맛과 멋을 제시했다.정치적 코드를 맞추느라 뒤숭숭한 국내 현실에서는 예술적 코드에 심취한 그들이 부러울 뿐이다.


여름 휴가중 유럽 여행을 한다면 짜증스런 정치적 코드를 떨치고 '다빈치 코드'를 따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루브르와 바티칸의 수많은 예술품과 보물이 존재하는 의미를 나름대로 새롭게 음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신앙심 논쟁에서만 벗어난다면 말이다.


밀라노·파리=김영규 부국장 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