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高)유가 충격 속에서 한동안 안정세를 보였던 원·달러 환율마저 큰 폭의 상승 행진을 시작해 내수 경기에 '2중 비상등'이 켜졌다. 환율이 상승할 경우 그만큼 원유 도입 단가가 높아져 국내 내수업체가 지급해야 하는 비용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유가의 충격파를 여과시켜 온 '환율 안전판'이 소멸되면서 국내 경제가 완충장치 없는 오일 쇼크에 직면하게 됐다는 진단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고물가)이라는 악몽에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내수 발목 잡는 환율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최근 상황에서는 내수 침체로 인한 부정적 측면이 더 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국내 경제가 '고유가-고환율'이라는 새로운 덫에 걸렸다"며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정도 추가 상승할 경우 경제성장률은 최대 1.5%포인트까지 떨어지고 여기에 환율 요인까지 더해지면 하락폭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본부장은 "하반기엔 내수가 성장을 이끌 것으로 봤는데 수정이 불가피해졌다"며 "고유가-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경우엔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환율이 오르면 수출업체들의 숨통은 트이겠지만 수출과 내수 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돼 우리 경제가 불균형 성장으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고 진단했다. ◆고유가가 환율을 밀어 올린다? 최근엔 고유가가 환율을 밀어 올리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원유를 사들이는 정유업체들이 당초 스케줄보다 달러화 매입 시기를 앞당길 경우 원·달러 환율이 상승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고유가로 인해 올해 경상수지 흑자폭이 기존 전망치보다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도 환율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 LG경제연구원은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를 당초 233억달러에서 125억달러로 대폭 낮춰잡았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수출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커져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는 반면 수입업체의 달러화대금 결제액은 늘어나게 된다. 그만큼 경상수지 흑자폭이 감소해 국내 외환시장에서 소화해야 하는 달러화 매물이 줄게 되고 이는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게 된다. ◆1070원이 다음 저항선? 원·달러 환율이 1025∼1027원 근처에 걸려 있는 매물벽을 뚫어낼 경우엔 1070원 선까지 별다른 저항선 없이 상승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국내 은행의 한 딜러는 "대내외 환경이 환율 상승을 부추기는 쪽으로 돌아가면서 국내 수출업체들의 네고 물량(수출대금 환전용 달러화 매물)도 다소 줄어드는 양상"이라며 "아직은 정유업체 등의 달러화 매수세보다 조선업체 등의 매도세가 우세하지만 유가 상황에 따라 환율이 더 크게 뛰어오를 소지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도 "엔·달러 환율이 추가 상승할 경우엔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화가 마르는 단기적인 매물 공백이 생겨 원·달러 환율이 크게 뛸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