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연(24.KTF)이 기적같은 벙커샷 버디로 US여자오픈 우승을 일궈낸 체리힐스골프장 18번홀은 예상대로 이번 대회 최대의 승부처였다. 왼쪽에 커다란 연못을 끼고 있는 18번홀은 파4이지만 길이가 무려 459야드에 달하는 거의 롱홀 수준. 여자 선수들로서는 세컨드샷을 그린에 올리는 것을 기대하기 힘든 홀. 60년째를 맞는 US여자오픈 역사상 가장 긴 파4홀이다. 원래 파5홀이지만 이번 대회에서 파4홀로 바꿔 수많은 선수들이 이 홀에서 눈물을 흘렸다. 4라운드 내내 18번홀에서 나온 버디는 고작 4개. 대회 동안 무려 858개의 버디가 생산된 점을 감안하면 18번홀 버디는 한마디로 선수들에게는 행운과 실력이 겸비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셈. 보기는 189개가 쏟아졌고 무려 33개의 더블보기가 양산된 18번홀에서 3타 이상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경우도 12번 나왔다. 18번홀 평균 스코어는 4.667타에 이르러 '파를 잡으면 버디나 다름없다'는 말이 선수들 입에서 절로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을 건너 쳐야 하는 티샷도 왼쪽으로 당겨지면 곧바로 연못행인데다, 왼쪽으로 휘어지는 도그레그 홀이라 우측으로 밀리면 홀까지 200야드를 훌쩍 넘는 비거리의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티샷을 페어웨이에 적중시킨다 해도 오르막에 190야드 안팎의 거리를 남기게 된다. 18번홀에서 2타만에 그린에 볼을 올린 그린 적중율은 고작 20.8%에 불과했다. 4라운드에서 17번홀까지 3언더파의 눈부신 플레이를 펼치던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티샷을 물에 빠트리는 등 악전고투 끝에 8타만에 홀아웃하는 악몽을 겪기도 했다. 18번홀에서 나온 4번째 버디가 바로 김주연이 4라운드 마지막홀에서 뽑아낸 기적의 벙커샷 버디. 이날 위성미와 함께 동반 라운드를 치른 김주연은 드라이버로 힘껏 티샷을 날려 페어웨이 한 가운데에 떨궜으나 홀까지 남은 거리는 무려 193야드. 페어웨이우드로 친 두번째샷은 짧게 떨어지는 바람에 그린 왼쪽에 버틴 벙커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뒷조에서 경기를 하던 모건 프레셀과 공동선두였던 김주연으로서는 1타를 잃게 되면 1타차 2위로 내려 앉게 되고 더 이상 남은 홀이 없기 때문에 우승 가능성도 그만큼 줄어드는 셈. 홀까지는 10여m가 남아 있어 파세이브가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김주연보다 좀 더 뒤쪽에서 벙커샷을 시도한 위성미의 볼이 홀 1m에 붙은 것이 김주연에게는 자신감을 줬을까. 김주연이 친 벙커샷은 높은 턱을 사뿐히 넘어 그린에 떨어졌고 3∼4m를 구르더니 깃대가 꽂힌 홀로 파고 들었다. 두팔을 높이 쳐들고 환호성을 올린 김주연은 위성미와 감격의 포옹을 나눴고 우레같은 박수갈채 속에 볼을 꺼내 다시 한번 손을 높이 쳐들었다. 티샷을 막 끝낸 프레셀이 버디를 잡아내지 않는 한 우승이었다. 김주연의 버디 세리모니를 지켜본 프레셀은 회심의 두번째샷을 날렸으나 그린을 빗나가 러프행. 프레셀의 세번째샷이 홀을 지나치자 가슴 졸이던 김주연을 둘러싸고 있던 대회조직위원회 요원들이 '네가 챔피언'이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나흘 내내 선수들에게 '개미지옥'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던 18번홀이 김주연에게는 생애 첫 우승과 생애 첫 메이저 챔피언, 그리고 우승 상금 56만달러의 거금을 안겨준 '행운의 홀'이 된 것이다. 김주연은 1라운드에서만 18번홀에서 보기를 했을 뿐 2,3라운드에서는 파를 지켜냈고 마지막날 버디까지 챙겨 18번홀에서 타수를 1타도 잃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