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지원대책의 일환으로 대형 할인점의 영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자격증 제도를 도입해 자영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정책 대신 대형 할인점의 지방 출점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률안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입법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할인점들이 강력하게 반발,대형 할인점 규제안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정치권의 규제 강화 움직임 정치권은 할인점을 규제하는 법률안을 입법 추진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이 할인점의 소도시 진출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해 놓고 있는 가운데 열린우리당 이화영 의원도 지난 6일 당정회의에서 '대형 할인점 출점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마련,입법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는 대형 할인점이 점포를 개설할 때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가 공원 조성,야간주차장 개방 등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각종 조건을 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나라당 안 의원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발의,이번 임시 국회 때 산업자원위에 상정할 예정이다. 이 개정안은 일정 기준 이하 소도시에 대규모 점포를 설립할 경우 해당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법에서 자유롭게 '등록'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을 바꿔 지자체장에게 허가권이란 강력한 무기를 쥐어주는 셈이다. ◆곤혹스러운 할인점 할인점들은 외국자본까지 들어오는 마당에 출점을 규제하는 것은 개방화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할인점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유권자 표를 의식해야 하는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지역 상인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만 하면 할인점 규제안을 들고 나오고 있다"며 비난했다. 일부 지자체가 할인점 출점 정책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것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할인점 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상인들과 유치하자는 주민들로 편이 나뉘어 충돌 일보 직전인 지역은 한두 곳이 아니다. 신세계 관계자는 "서귀포시장이 시개발을 명분으로 출점을 권유하는 마당에 시의회는 준공업지역에 할인점을 짓지 못하도록 한 조례를 통과시키는 상황이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전문가들은 할인점과 영세 상인들이 공존할 수 있는 상생해법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할인점은 과잉출점을 자제하고 영세 상인들은 자기 점포를 차별화해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재래시장은 전통의 풍물과 정서로 소비자들에게 볼거리와 놀거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얘기다. 변명식 한국유통학회장(장안대 교수)은 "시장논리로 가면 재래시장 상인과 구멍가게 주인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면서 "대형 할인점들은 스스로 출점을 절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실근 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전무는 "국내 유통시장에서 할인점은 마치 브레이크 없는 벤츠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규제는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기업들은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기업형 대형 점포의 비중이 더욱 높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인균 이마트 상무는 "할인점 출점으로 주변 영세 점포가 문을 닫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면서도 "작은 점포 역시 업태별 특성을 살려 나간다면 공존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정희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대형 할인점의 출점을 제한할 경우 기존 출점 업체를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와 특혜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며 출점 제한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교수는 "정부의 중소 유통업 경쟁력 제고방안을 보면 조직화 정보화 협업화 등이 핵심을 이루는데 대기업을 따라가서는 결코 생존할 수 없다"며 "상품구색과 서비스,매장 분위기에서 할인점과 차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지난해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하면서 '대규모 점포'는 등록제를 원칙으로 했다. 정치권에서 주문했던 인구기준 제한이나 허가제 등은 반영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대기업을 규제하는 하향 평준화 방식보다 중소 상인을 지원하는 상향 평준화가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강창동 유통전문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