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모(47)씨는 미국 워싱턴에 살며 한국의 고미술품과 근현대미술품을 구해 한국에 연결해주는 ‘나까마(브로커)’다.


80년대 후반 가구업을 하는 친구로부터 희소식이 날아왔다.


미국인 손님집에서 ‘수근’이란 서명이 있는 그림을 봤다는 것이다.


친구를 앞세워 그 집을 가서 봤더니 박수근(1914-1965)화백의 10호크기 유화였다.



그 미국인은 주한미군 시절 박수근 그림을 샀다고 한다.


최씨는 그 그림을 팔라고 여러 번 사정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미국인 집 정원에 'For Sale'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는 게 아닌가.


그는 팻말을 보자마자 그 집으로 쳐들어가 "내가 집을 사겠다"고 말했다.


단 그 그림과 19세기 반닫이를 함께 판매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는 결국 그 집을 35만달러에 사면서 그림과 반닫이도 5000달러를 주고 손에 쥐었다.


최씨는 1년도 안돼 그 그림을 서울에 있는 한국인 화상을 통해 한 소장가에게 5억원에 팔았다.


최씨는 이런 식으로 미국에 흩어져 있는 박수근 그림 4점을 한국에 반입했다고 털어놨다.


서울 인사동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R씨(57)는 80년대 초 생면부지인 한 할머니의 소개로 박수근 유화 소품 3점을 미국에서 가져오는 행운을 얻었다.


이 할머니의 딸은 1950년대 후반 서울 반도화랑 옆의 한 여행사에서 근무했는데,그녀로부터 통역 등의 도움을 받은 박 화백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그녀는 미국 뉴저지로 이민가서도 이를 보관하고 있었다.


R씨는 미국으로 건너가 2호 3호 크기 3점을 구입해 모두 국내 소장가들에게 팔았다.


박 화백의 작품은 토속적 정서를 잘 표현한데다 값이 쌌기 때문에 밀러 부인이나 핸더슨 부인 등 당시 주한 미국인들의 손을 거쳐 상당수 미국으로 빠져나갔다.


박수근의 차남인 성남씨(현재 호주 거주)는 "미국으로 건너간 아버님 유화 그림만도 200점에서 250여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의 작품이 국내에서는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 반면 오히려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였던 것도 한 요인이다.


박수근이 밀러 부인에게 쓴 편지를 보면 대표작 중 하나인 1961년작 '노인'이 50달러 정도에 판매됐다.


웬만한 소품들은 10달러에 거래됐다고 한다.


미국에 흩어져 있던 박수근 그림들은 80년대초부터 국내로 반입되기 시작했다.


유족이 밀러 부인을 만나 30여점을 가져왔고 소더비와 크리스티경매에는 80년대 후반부터 출품됐다.


공식적으로 최고가에 거래된 작품은 지난해 3월 뉴욕 크리스티경매에 나왔던 '앉아 있는 여인과 항아리'로 낙찰가가 약 13억원이었다.


지금까지 국내에 반입된 그의 작품은 100여점.단순 계산으론 미국에 아직까지 100점 이상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분실 파기 등으로 없어졌고 남아있는 그림은 20~30여점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박수근 유화를 찾기 위해 요즘도 7~8명의 '나카마'들이 미국 전역을 훑고 있다.


s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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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 및 화가에 얽힌 뒷얘기를 취재,소개하는 시리즈 '이성구 미술전문기자의 Art Story'가 매주 월요일자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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